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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귀열 영어] Did you have your meal? (식사는 하셨습니까?)

입력
2015.10.09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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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and English (문화와 영어)

‘밥은 먹었느냐?’ ‘쌀이 떨어졌어요.’ 이들 문장을 영어로 옮길 때 직역을 하면 ‘Did you eat rice?’ ‘I ran out of rice’가 된다. 영어 원어민들은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도 없다.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감안하여 ‘Did you eat a meal?’이나 ‘Have you eaten?’이라는 번역도 가능하지만 ‘Have you had lunch(dinner)?’가 더 나을 것이다. 쌀이 떨어졌다는 말은 서양식 개념으로 ‘run out of bread’로 바꿔야 한다.

한국인이 재미교포에게 ‘어떻게 빵만 먹고 사느냐, 질리지 않느냐?’라고 묻는 것도 문화적 이해 부족에서 비롯됐다. 미국인들이 빵을 주식으로 먹는 비율은 절반도 되지 않고 쌀을 먹는 미국인도 상당히 많아졌다. 옛날에 ‘bread and butter’가 주식(主食)을 의미했고 죄수나 벌을 받을 때는 버터나 우유 대신 ‘bread and water’를 주었다고 한다. 기독교에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십시오’(Give us this day our daily bread)라든지 밥벌이하는 사람을 breadwinner라고 하는 것 모두 빵을 먹고 사는 것으로 표현한 것이다.

먹고 사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필수 요소는 bread and roses라고 한다. 1912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방직공장 노동자들이 노동 조건의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을 했는데 당시 내걸었던 말이 ‘We want bread and roses’였다. 우리는 빵과 장미를 원한다는 뜻이 아니라 빵이라는 최소한의 생계비와 장미가 상징하는 최소한의 질적 삶을 보장해 달라는 뜻이었다. 그 말의 뉘앙스가 좋아 지금도 파업 노동자들의 피켓에는 이 말이 자주 등장하고 시(詩)적 표현에도 쓰이며 1970대에는 여성 운동가들의 구호가 되기도 했다. 이 성공적인 파업이 유명해진 것은 바로 구호 때문이었고 구호 뒤에는 강력한 시대적 표현법이 사용된 것이다.

물론 이 사건 이전에도 bread는 ‘먹고 사는 생계’를 나타냈다. 가령 17세기 이전부터 쓰인breadline은 빵을 타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 즉 빈민자를 의미했다. ‘Taking the bread out of our mouths’라는 말은 ‘먹고 있는 빵을 남의 입에서 빼앗다’는 뜻으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밥줄 끊다’는 의미다. 빵 굽는 사람들의 후한 인심은 a baker’s dozen에서 엿볼 수 있다. 1 dozen은 12인데 하나 더 얹어준다는 ‘덤, 보너스’의 뜻은 듣기만 해도 정겹다.

빵의 종류 중에는 biscuits도 있다. 두 번 굽다(baked twice)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에서 유래했고 과자를 의미하진 않는다. 한 세계적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에서 먹을 수 있는 딱딱한 biscuits가 좋은 예다. 빵을 roll로 표현하는 것 또한 재미있다. 비행기 안에서 빵을 보이며 어떤 것을 먹을 것이냐고 승무원이 묻는다. ‘I’d like a soft roll’처럼 말하는 것은 Muffin이나 toast 등과 구별 짓는 말이기도 하다. 영어에서 bread가 주는 의미나 우리에게 ‘쌀’이 주는 의미의 차이는 단어가 아닌 문화에서 비롯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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