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두 살 시절이다. 가난한 자취생이었고, 그럼에도 내가 세상의 왕인 줄 알았고, 총알 없이 과녁은 분명하거나 과녁은 없어도 내 존재 자체가 범상치 않은 총알이라 여겼던 것 같다. 어느 일요일이었다. 먹을 게 없었다. 주머니엔 토큰 하나와 50원짜리 동전 하나. 배가 많이 고팠다. 도둑질 하겠다는 충동을 그때 처음 느꼈다. 장발장이 그저 머리가 긴 가난뱅이라고만 알고 있을 때였고, 마침 내 머리도 좌절한 로커 마냥 길고 지저분했다. 허기와 호기가 겹쳐 뭔 일이라도 저지르자는 심사였다. 일왕에게 폭탄을 던지는 독립투사라도 된 기분으로 동네 슈퍼마켓에 갔다. 컵라면 하나, 빵 하나만 훔치자고 마음먹었다. 늘 인상 좋은 미소만 흘리는 주인아저씨가 예의 표정 그대로 카운터에 앉아 있었다. 비장했으나, 그만큼 어설프고 당황스러웠다. 컵라면 종류가 그렇게 많은지 그때 처음 깨달았다. 빵도 가지각색이었다. 도무지 뭘 골라야 할지 몰랐다. 그렇게 몇 분 정도 벌벌 떨다가 혼자 진땀투성이가 돼서는 그냥 가게를 나왔다. 인상 좋은 아저씨에게 목례까지 했다. 그러곤 쥐고 있던 50원짜리 동전을 공중전화에 투하. 수신인은 이모. 토큰 하나의 이동력은 실로 위대했다. 밥 얻어먹고 용돈까지 두둑이 얻었다. 시인이 된지 두 달 되던 때였다. 장발장의 원어 표기는 ‘Jean Valjean’, 머리가 장발인진 아직 모른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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