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소한 저자 내세우기보다
한번에 中 고전 두 권 읽기
승부수 띄워 예상 밖 성공

‘첫’이라는 글자는 모양에서나 소리에서 어떤 긴장감이 느껴진다. 흔들리지 않고 바로서기 위해 다리로 버티고 있는 듯한 모양을 하고 있는가 하면, 곧이어 뱉을 다음 소리를 위해 짧은 순간 날숨을 멈추게 한다. 출판사의 첫 책 역시 이러한 ‘첫’이 주는 긴장과 집중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 출판사의 첫 책인 ‘왼손에는 사기, 오른손에는 삼국지를 들어라’는 다행히 출간 즉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고 사랑으로 이어져 곧바로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사실 이 책은 우리 회사가 첫 책으로 준비하던 책이 아니다. 진짜 첫 책은 따로 있었다. 하지만 첫 책이 주는 긴장과 기대 때문에 진짜 첫 책의 계획은 무산됐고, 동시에 진행하던 이 책이 ‘더숲의 첫 책’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왼손에는 사기, 오른손에는 삼국지를 들어라’는 사람에 관한 역사서 ‘사기’와 일에 관한 역사서 ‘삼국지’의 핵심적인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저자인 밍더는 중국 고전 및 전통문화연구 분야의 대표적인 저술가로, 세상의 모든 경영에 대한 철학을 담고 있는 두 위대한 고전을 통해 조직의 리더와 경영자에게 성공의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 저자의 인지도나 영향력은 거의 전무했고, 출판사로서는 당찬 출사표를 던질 수 있는 근거가 미흡하게만 느껴졌다. 결국 우리는 ‘대표적 중국 고전 두 권을 한 권으로 읽는다’라는 콘셉트와 그것을 보여줄 수 있는 제목으로 승부수를 띄우기로 했다. 2,260매나 되는 원고매수가 자칫 거부감을 일으킬까 봐 우려도 되었지만, 제목과 내용에 맞춰 책의 형태를 편집하고 디자인함으로써 결국에는 제목?콘셉트?디자인이 한데 어우러지는 결과물을 만들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출판 본연의 자세로 임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당시로서는 그것 외에 방법이 없었다.
출간 후 크고 작은 언론의 주목을 시작으로 독자들로부터 예상치 못한 커다란 사랑을 받았다. 단 한 권으로 지금의 더숲조차 꿈도 못 꾸는 주문을 받았고, 무명의 출판사를 서점가에 확실히 각인시킬 수 있었다. 특히 이 책의 제목과 비슷한 책들이 뒤이어 출간되는 것을 보고 우리의 ‘첫 책’이 성공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물론 첫 책이 출간된 2009년 7월부터 지금까지 첫 책과 같은 성공이 계속 이어지지는 않았다. 좌절과 실패의 긴 터널도 지나야 했고, 짧지만 기쁨과 감사에 넘쳤던 작은 성공들도 있었다. ‘첫’의 성공은 자칫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절감했다. 자신감을 안겨주지만 그것으로 인해 더 큰 좌절을 맛보고 포기를 앞당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처음은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어디를 향해, 어떻게 가고 있느냐일 것이다. ‘왼손에는 사기, 오른손에는 삼국지를 들어라’가 출간된 지 6년이 지난 지금, 더숲은 첫 책과는 다른 방향의 책들을 출간하고 있고, 독자들로부터 또 다른 방식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리고 매 순간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을 확인하면서 한발한발 나아가고 있다. 처음은 그저 시작을 알리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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