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턴'서 배우는 소통의 지혜

영화 '인턴' 스틸컷

영화 ‘인턴’이 뜻밖의 흥행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로버트 드니로가 70세의 인턴으로 나와 30세의 스타트업 최고경영자인 앤 해서웨이와 공감하고 소통하는 내용의 영화는 만듦새가 뛰어난 수작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시종 웃는 얼굴로 우충좌돌하는 젊은 여성을 존중하고 경청하는 미국식 신사의 전형을 보여주며 ‘저런 게 바로 어른이었지’ 울컥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굳은 얼굴로 매사 훈계하고 가르치려 드는 ‘꼰대’들에 지친 한국의 젊은이들이 ‘진짜 어른’의 모습에 격렬하게 호응하는 게 영화의 흥행원인이라는 분석이다.

소통 가능한 어른이 있다면 어디든 찾아가 숭배할 각오가 돼 있는 한국의 젊은이들은 황혼의 스타들을 재발굴하기도 한다. 2013년 발간된 첫 산문집 ‘밤은 선생이다’가 젊은 지식인ㆍ예술가들 사이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스타덤을 형성한 황현산 고려대 불문과 명예교수가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95세의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가 ‘어른’의 표상으로 떠올랐다. 지난달 중순 복간한 그의 책 ‘예수’는 종교서적은 팔리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깨고 3주 만에 7,000부가 나가며 3쇄에 들어갔다. 온ㆍ오프라인 주요 서점에서 종교 분야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이 책은 예수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김형석 교수에 대한 팬덤으로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는 게 출판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그렇다면 나이를 먹고 어른이 아닌 꼰대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나도 꼰대인 건 아닐까.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직장인 10인에게 꼬치꼬치 물었다.

● 내가 틀렸을지도 모른다

“김지민씨. 일이란 건 말야, 다 순서가 있고 방법이 있는 거야. 머리가 있어, 없어? 봤지? 일은 이렇게 하는 거라고.”

지금은 다른 회사로 옮겨 볼 일이 없지만, 전 직장상사였던 A 팀장만 떠올리면 김지민(29)씨는 인상이 구겨진다. 출근시간이 오전 8시인데, 한 시간 일찍 나와 자기보다 30분만 늦어도 지각이라고 싫은 소리를 해댔던 그는 기본적 발화형식이 만사에 정의를 내리는 식이었다. “보고서는 이렇게 쓰는 거야” “후배라면 알아서 삼겹살을 구워야지” 등 별 것도 아닌 일에 자신은 세상의 모든 진리를 다 안다는 식으로 말하기 일쑤였다. 색다른 방식으로 업무를 진행해보고 싶어도, 자신만의 방식을 고수해 기계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사전에서 ‘늙은이’나 ‘선생님’의 은어로 정의하는 꼰대는 매우 한국적인 인간형이다. 인간관계의 주요 작동원리가 위계질서인 이 사람들은 살아온 세월을 경험과 연륜이 축적된 보고라고 여긴다. 이들의 사고 구조 속에서 능력, 도덕, 지혜 등의 덕목은 시간에 따라 증가하는 정비례 함수관계를 갖는다. “니들이 뭘 알아”의 세계관이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것. 요사이 꼰대 담론이 횡행하는 것은 유난스레 꼰대가 많아졌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의사소통을 당연한 기준으로 받아들이는 젊은 세대에게 기성세대의 의사소통 방식이 훨씬 더 이물스럽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세계는 애송이와 어른의 이원적 수직구조로만 이뤄져 있다고 여기는 꼰대의 세계관에 ‘애송이’들은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라고 생각한다” “나는 ○○○인 것 같다”의 문장형식을 사용해 말하곤 하는 황현산 교수는 이 때문에 딸에게 싫은 소리를 들은 일화가 있다. 깔끔하게 ‘A는 B다’라고 말하지 왜 듣는 사람 답답하게 그러냐는 항의였다. 아버지의 대답. “그랬다가 아니면 어쩔라고?” 그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평생을 선생으로 살고도 학생 마인드를 못 버린 것”이 젊은 감각을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말한 바 있다. 꼰대질은 ‘내가 다 안다’ ‘나는 늘 옳다’는 생각에서 나온다. 자기 오류의 가능성, ‘내가 옳다’는 확신이 누군가에게는 틀린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

● 내가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새댁, 출근하나 봐? 애가 없으니 아가씨 같네. 그래도 애를 낳아야지. 자식 없는 부부는 모래성 같은 거야. 일도 좋지만 어서 애부터 가져.”

결혼 7년째지만 아직 아이가 없는 윤수연씨는 엘리베이터에서 자주 마주치는 같은 동 아주머니가 너무 불편하다. 만날 때마다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아주머니의 말이 선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들을 때마다 스트레스다. 충고는 세상에서 가장 값싼 말이다. 수요는 없는데 공급은 넘쳐나기 때문이다. 묻지도 않았는데 ‘머리 자르면 더 예쁠 것 같아’라고 말하는 건 ‘지금 너는 안 예쁘다’는 비난일 뿐이다.

원치 않는 충고를 늘어놓는 사람을 꼰대라 일컫지만, 어떤 면에서 그들은 건강하고 긍정적인 멘탈의 소유자다. 세상에는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이 있기는커녕 사실상 나 자신도 바꾸기가 힘들다. 그러나 꼰대는 자신이 세상을, 타인을, 그것도 말 몇 마디로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있는 그대로의 타자를 받아들여야 하며, 내가 도움을 요청 받기 전까지는 개입하지 말아야 하는 사적 영역이라는 게 있다는 명확한 인식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인턴’에서 로버트 드니로는 우연히 목격한 앤 해서웨이 남편의 불륜을 함구하느라 신체적 불편까지 겪지만, 결국 참고 지켜본다.

꼰대짓과 진짜 필요한 조언의 차이는 결국 두 사람간의 관계가 좌우한다. 말인즉슨 옳다. 다만 그 말을 누가 하느냐가 다를 뿐이다. 두터운 신의와 상호작용이 없는 관계라면 멘토도 될 수 없고, 조언도 할 수 없다. “내가 특별히 아껴서 하는 말인데” 같은 조건절을 붙여봐야 효과 없다.

아무리 내가 옳은 것 같아도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갖는 것. 듣기 싫은 잔소리만 늘어놓는 꼰대가 되지 않는 지름길이다. 게티이미지뱅크

●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이은주씨. 내가 신입이었을 때는 말야, 새벽에 나와 물걸레 청소도 할 정도로 열정적이었어. 요즘 신입들은 회사 생활을 너무 프리하게 하는 거 같지 않아?”

잡지사 기자가 물걸레질을 하는 게 왜 열정의 증거가 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이씨는 꼰대를 ‘나 소싯적에’를 간투사처럼 남발하는 사람으로 정의했다. “요즘 일하기 너무 편해졌다”를 하루라도 말하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 사람들이다. 일하기가 편해져서 너무 많은 일을 하게 된 현실은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젊은이들이 근성이 없다, 노력은 하지 않고 불평불만만 많다고 생각한다. 만물은 유전한다. 그때는 맞았더라도 지금은 틀릴 수 있다.

● 말하지 말고 들어라, 답하지 말고 물어라

“자유롭게 자기 의견을 애기해 보라고. 근데 말야, 내 생각엔….”

회사의 중간관리자급인 오원규(41)씨는 자신도 때때로 꼰대가 돼가고 있는 것 같다고 느낀다.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어느새 혼자 떠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다. “자기 말보다 남의 말을 더 많이 듣는 게 중요하다는 건 누구나 알죠. 근데 치열한 훈련 없이는 안 되는 것 같더라고요.”

반말을 하지 않는 것도 꼰대가 되는 않는 안전판 중 하나다.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그저 아직도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한 인간이자 철학도일 뿐"이라는 말로 감동을 준 김형석 교수는 100세를 눈앞에 둔 나이에도 결코 반말을 쓰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 출판관계자는 "항상 가지런하고 단정한 매무새와 말씨, 철학적 언사를 볼 때마다 이런 모습이 바로 큰 어른이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 존경은 권리가 아니라 성취다

존경 받는다는 느낌은 꼰대들의 가장 중요한 가치 지향이다. 나이와 직급에 따라 자동적으로 존경도 발생한다면 좋으련만, 존경은 권리가 아니라 성취해야 하는 과업이다. ‘권위적인, 강압적인, 단정적인, 훈계하는, 잔소리를 늘어놓는, 독단적인’ 등의 단어가 꼰대를 묘사하는 데 자주 동원되는데, 영어 단어 중 ‘bossy’가 이 의미들을 포괄한다. 보스(boss)에서 나온 이 단어를 영한사전은 ‘우두머리 행세를 하는’, ‘다른 사람을 쥐고 흔드는’으로 풀이한다. 특이하게도 미국 문화에서는 주로 고위직의 여성 꼰대를 묘사하는 데 쓰인다.

기술매뉴얼 사이트 위키하우의 ‘꼰대(bossy)가 되지 않는 법’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이 꼰대질을 하게 되는 것은 자존감이 낮은 것과 깊은 연관이 있다. 강압적이거나 무례하게 말하는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남들이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경청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불안이 자꾸 타자, 특히 약자들을 향해 자신의 말에 귀 기울이도록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창의리더십센터가 발간한 ‘‘꼰대(bossy)가 아니라 리더가 되는 법’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201명의 최고경영자를 설문 조사해 꼰대 타입의 직원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성별이나 직위와 상관없이 CEO의 80%가 꼰대 타입의 직원을 싫어한다고 응답했으며, 67%는 커리어에서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꼰대가 되지 말아야 할 이유가 하나 늘었다.

박선영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 체크리스트: 당신은 꼰대입니까?

1. 사람을 만나면 나이부터 확인하고,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는 반말을 한다.

2. 대체로 명령문으로 말한다.

3. 요즘 젊은이들이 노력은 하지 않고 세상 탓, 불평불만만 하는 건 사실이다.

4. “○○란 ○○○인 거야” 식의 진리명제를 자주 구사한다.

5. 버스나 지하철의 노약자석에 앉아 있는 젊은이에게 “비켜라”고 말하고픈 충동이 인다.

6. 후배의 장점이나 업적을 보면 자동반사적으로 그의 단점과 약점을 찾게 된다.

7. “내가 너만 했을 때” 얘기를 자주한다.

8. 나보다 늦게 출근하는 후배가 거슬린다.

9. 고위공직자나 대기업 간부, 유명 연예인 등과의 개인적 인연을 자꾸 얘기하게 된다.

10. 커피나 담배를 알아서 대령하지 않거나 회식 자리에서 삼겹살을 굽지 않아 기어이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후배가 불쾌하다.

11. 낯선 방식으로 일하고 있는 후배에게는 친히 제대로 일하는 법을 알려준다.

12. 자유롭게 의견을 얘기하라고 해놓고 나중에 보면 내가 먼저 답을 제시했다.

13. 옷차림이나 인사예절도 근무와 연관된 것이므로 지적할 수 있다.

14. 내가 한때 잘나가던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15. 연애사와 자녀계획 같은 사생활의 영역도 인생선배로서 답을 제시해줄 수 있다고 믿는다.

16. 회식이나 야유회에 개인 약속을 이유로 빠지는 사람을 이해하기 어렵다.

17. 내 의견에 반대한 후배는 두고두고 잊지 못한다.

18. 미주알고주알 스타일로 업무를 지시하거나 확인한다.

19. 아무리 둘러봐도 나보다 더 성실하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20. 아이들에게도 배울 게 있다는 원론에는 동의하지만, 실제로 뭘 배워본 적은 없다.

(참조: 창의리더십센터 보고서 ‘How to Be the Boss without Being the B-word(Bossy)’)

*0~3: 당신은 성숙한 어른입니다.

*4~7: 꼰대의 맹아가 싹트고 있음.

*8~15: 꼰대 경계경보 발령.

*16~20: 자숙기간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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