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망했다.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세계 곳곳으로 퍼질 때 여느 한국 사람들과 달리 자랑스럽지 않았다. 비호감도는 영국 남부의 한 도시 길거리에서 생겼다. 거리를 걷던 7세 가량의 소녀가 갑자기 몸을 흔들며 ‘에~ 섹시 레이디~’를 흥얼거릴 때 얼굴이 뜨거웠다. 소녀의 부모나 조부모가 “망할 싸구려 한국 노래가 우리 애를 망친다”라고 흥분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영국은 그래도 개방적인 국가니까’ ‘영국의 저급 하위문화는 우리보다 더하니까’라는 생각으로는 위로가 되지 않았다.
런던 도심에선 이런 ‘봉변’도 당했다. 얼큰하게 취한 한 젊은 영국 여성이 갑자기 팔을 붙잡고 물었다. “내 남자친구가 ‘강남스타일’ 춤을 춰볼 테니 평가를 해줄 수 있냐”고. 단호히 “노”를 외치며 등을 돌렸다. 여자는 원망 어린 어눌한 한국말을 내 등에다 쏟았다. “오빤 강남스타일~” 1970년대 개발시대를 거치며 졸부들이 쏟아졌던 곳, 돈으로 귀결되는 여러 욕망이 펄펄 끓어오르는 곳이라는 부정적인 고정관념이 ‘강남스타일’에 대한 거부감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만나는 외국인 친구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단정하듯 던지는 질문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강남에서 살아?” 그들은 종종 강남을 서울로, 강남을 한국으로 인식했다. ‘강남스타일’로 대중문화가 지닌 위력을 새삼 확인했다.
‘강남스타일’에 대한 인상은 싸이가 미국 방송에 출연한 모습을 보고 좀 바뀌었다. 능숙한 영어로 사회자들과 농을 주고 받으며 한국 문화를 소개할 때 ‘강남스타일’에 대한 호감도 쌓였다. 주말 저녁 유럽의 어느 도시 거리를 걷다가 마주친 풍경이 결정적이었다. 경차에 몸을 실은 네 남자가 몸을 격하게 흔들자 작은 차체가 출렁이는 모습을 보며 웃음이 터졌다. ‘강남스타일’이 비록 고급스럽다 할 순 없어도 국경을 초월해 수 많은 사람을 흥겹게 한다면, 다른 피부와 다른 문화를 지닌 사람들이 한국 노래로 화합할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은 일이라 여겨졌다. 한국이 강남이 아니더라도 강남이 한국일진대 ‘강남스타일’을 굳이 미워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라고도 생각했다.
어느 지방자치단체나 그렇겠지만 서울 강남구는 ‘강남스타일’이 지닌 상품성을 놓치지 않았다. 압구정동 일대에 강남구 관광 안내소를 만들고 열차 객실 모양의 관광버스도 배치했다. 관광지는 낭만을 불러야 마땅한 곳인데 강남을 찾을 때마다 낯설고 정 붙이기 힘들다. 그럼에도 ‘그들만의 리그’에 끼고 싶다는 묘한 동경심이 동시에 생긴다. 강남에 대한 시선은 ‘강남스타일’에 대한 그것처럼 이중적이다.
강남구가 한전부지 개발과 관련해 서울시와 갈등을 벌이는 와중에 ‘강남특별자치구’를 운운해 논란을 불렀다. 서울시가 한전부지 개발에 따른 수익을 다른 구에 고루 나누려 하니 강남구를 서울에서 떼어달라는 식의 요청을 한 것이다. 강남구는 서울시의 일방적인 사업 추진에 항의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라고 8일 급히 해명에 나섰으나 대중의 반발은 크다. “우리는 너희와 달라” “우리만 잘 사면 된다”는 강남 사람들의 특권의식을 반영했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진정한 강남스타일”이라는 비판이 가장 눈에 띈다.
힘있고 돈도 있는 사람들이 없는 사람과 자신들을 구별 지으려는 노력은 우리 사회에 흔하다. 한 지인은 아이의 초등학교를 찾았다가 만난 한 학부모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울에 젖었다고 한다. “○○ 엄마, (아파트 단지에서 가장 작은 평수가 몰린) ○○○동에 산다는 말 하지 마세요. 다른 엄마들이 말도 붙이지 않아요”라는 ‘조언’을 들었다는 사연은 이제 그리 특별한 일도 아니다. 같은 아파트 단지이면서도 평수가 작은 동과 큰 평수 동의 출입구가 분리된 경우도 허다하다. 강남구의 ‘강남특별자치구’ 언급이 또 다른 ‘강남스타일’이 되지 않기를, 사회 곳곳에서 나쁜 ‘강남스타일’은 따라 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 안의 ‘분단’은 이미 너무 많은데 또 다른 분단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
라제기 엔터테인먼트팀장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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