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러미 코빈 영국 노동당 신임 대표가 여왕의 정치자문기구인 추밀원(Privy Council) 선서식 참석을 거부해 논란이 일고 있다. 코빈 대표는 선약 때문이라고 밝혔지만, 줄곧 군주제 폐지를 주장해 온 그가 선서식에서 여왕에 충성 맹세 하기를 거부한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지난달 노동당 대표로 선출된 코빈이 8일(현지시간) 열리는 추밀원 회의에서 선서식을 갖고 정식 위원으로 임명될 예정이었으나 사전 약속이 있다는 이유로 불참을 통보했다고 7일 보도했다. 하지만 선약에 대해 구체적 설명을 하지 않아, 일각에서는 코빈 대표의 불참에는 여왕 앞에서 무릎을 꿇고 손등에 키스하며 충성을 맹세하는 선서식 절차를 거부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추밀원은 장관을 비롯한 정치인과 주교, 판사 등 위원 600여명으로 구성된 왕실 자문기관이다. 통상 야당 대표는 추밀원 위원에 포함되는데, 코빈 대표가 이날 선서식에 참석하지 않으면 여왕 앞에서 선서를 거부한 첫 번째 야당 대표가 된다. 코빈 대표의 전임자인 에드 밀리밴드와 고든 브라운의 경우 과거 내각 장관을 맡은 시절 이미 추밀원 구성원으로 추대된 상태였기 때문에 대표 자격으로 선서를 할 필요가 없었다. 토니 블레어 전 총리는 1994년 노동당 대표에 오른 뒤 엿새 만에 추밀원 선서를 했다.
공화주의자인 코빈 대표는 지난달 열린 ‘제2차 세계대전 영국 본토 항공전 75주년 기념식’에서 국가를 제창하지 않았다가 여왕을 모욕했다는 거센 비판을 받기도 했다. 여론이 악화하자 그는 얼마 후 “앞으로는 국가를 부르겠다”며 사태를 일단락 시켰다.
한 추밀원 위원은 “코빈의 행동은 어른스럽지 못할 뿐만 아니라 여왕에 모욕을 주는 것”이라면서 “스스로 신뢰받는 리더에 오를 준비가 안 됐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라고 지적했다.
코빈 대표는 추밀원령에 따라 여왕 앞에서 선서하지 않고 추밀원에 가입할 수는 있다. 하지만 텔레그래프는 “추밀원령은 보통 국외 정치인이나 영연방 국가 총리에게 적용되는 법령”이라며 “코빈은 여왕을 만나 선서하는 대신 위원으로 취임할 수 있는 법적 맹점을 이용할 것”이라고 전했다.
신지후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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