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실·고시식당·버스정류장 등 역사 박물관에 옛 모습들 재현
‘엄마를 위해 성공하자, 합격하자!’
사방이 막힌 책상에는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포스트잇(접착식 메모지)이 잔뜩 붙어있다. 메모지에는 암기를 위해 적어놓은 암호 같은 문구들이 빼곡하다. 그 중에서 유난히 꾹꾹 눌러쓴 메모 하나가 눈에 띈다. 뒷바라지 해주는 부모의 정성을 헤아리며 매일 하루 10시간씩 법전과 씨름하는 고시생의 모습이 보이는 듯 하다.
8일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에서 진행중인 ‘신림동 청춘-고시촌의 일상’ 전시에 재현된 고시촌 독서실의 풍경이다.
도림천 건너편 산등성이를 빽빽한 건물로 가득 메운 신림 9동에는 ‘신림동 고시촌’이 있다. 2000년대 초까지 주민 과반수가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고시 준비생들이었고, 주민 상당수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 고시 관련 시설과 각종 상권에 종사했다. 이들이 모여 신림동은 ‘고시촌’이라는 공간으로 정착했다.
지난달 11일 문을 연 전시회는 고시생의 24시간 수험생활, 고시 공부를 지속하기 위한 아르바이트, 고시촌 괴담, 선택의 갈림길에서 남거나 떠나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신림동 고시촌의 일상을 그대로 재현했다.
특히 전시실 입구에 재현된 실물크기의 버스정류장이 눈길을 끈다. 버스 정류소 유리와 쓰레기통 등에는 ‘잠자는 방’, ‘하숙 구함’ 등 빈 방을 내놓는 전단이 잔뜩 붙어있다.
일명 ‘고시식당’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고시생들의 식사를 책임지는 곳이다. ‘오전 11시 20분~오후 2시, 소고기 무국, 닭복음, 단호박죽’
고시식사 입구를 재현해 놓은 코너에 손 글씨로 소박한 점심 메뉴와 운영시간이 적혀있다. 한 달치 월식권을 판매하는 ‘월식합니다’라는 안내판도 눈에 띈다.
전시를 찾은 직장인 이진우(24)씨는 “7년 전 신림역 근방 고시원에서 공부를 했던 적이 있어서 ‘신림동 청춘’이라는 말만 들어도 마음이 아련하다”면서 “신림동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곳곳에서 수험서와 씨름하는 젊은이들을 생각하면 안쓰러운 마음 뿐”이라고 말했다.
현재 신림동은 2008년 로스쿨 도입과 2017년 사법시험 폐지로 고시촌을 떠나기 시작한 고시생들을 대신해 ‘1인 가구’라 불리는 또 다른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 됐다. 불안정한 고용, 실업, 학업, 취업 준비 등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청년이 이곳으로 모여들고 있다.
전시를 기획한 송지현 학예사는 “최전성기를 누렸던 신림동 고시촌을 보고 많은 분들이 그 시절에 대한 향수와 낭만을 얻어가시는 것 같다”면서 “고시촌의 형성과 변천사를 배경으로 젊은 세대의 삶과 한 동네의 성격이 어떻게 시대를 만나 변화해 가는지 살펴보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전시회 관람 시간은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며 주말과 공휴일은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다. 관람료는 무료다.
글ㆍ사진=손효숙기자 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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