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가능인구’란 개념이 있다. 15세에서 64세에 해당하는 인구를 말한다. 복지국가의 지속가능성을 따질 때 핵심적인 개념이다.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면 국가운영이 힘들어진다. 저출산으로 돈벌이 할 사람은 줄어드는데 고령화 때문에 먹여 살려야 할 사람만 늘어나는 사회. 상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고 ‘가족계획’을 외치던 정부가 다둥이를 격려하는 ‘출산장려’로 부랴부랴 선회한 까닭이다.
한국의 사회보장 제도가 착착 확충되면서 노인부양의 사회적 부담이 법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복지비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연금과 의료는 ‘노인들을 위한 복지’다. 비용부담은 대개 미래생산가능인구의 몫으로 남게 된다. 연금과 의료 개혁의 과정에서 ‘미래세대로의 비용전가’란 표현이 단골로 등장하는 이유다. 생산가능인구의 크기만 엇비슷하게 유지된다면 세대 간의 ‘내리사랑’으로 유지될 수 있는 복지국가가 저출산ㆍ고령화로 인해 위기에 빠져버렸다. 복지국가의 지속가능성을 염려한 정부가 미래의 납세자요 복지비용부담자인 미래생산인력을 늘이기 위해 출산장려를 위한 각종 처방을 쏟아내는 이유다.
지속가능한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서 정부가 추진하는 지금까지의 노력들이 어느 정도 답이 되긴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다둥이사회’만을 주요 타깃으로 설정해서는 들인 돈에 비해 얻어지는 과실이 생각보다 적을 것이다. 이 분야의 여성가족정책이 출산율을 높이게 되는 임계점까지 도달하려면 엄청난 예산을 쏟아 부어야 한다.
그냥 하는 얘기가 아니라 선진국의 경험담이다. 각종 사회조사를 보면 우리 국민들은 세금 내는 일을 매우 주저한다. 기껏해야 중부담ㆍ중복지가 우리 복지국가의 한계일 거라 짐작하게 되는 정황 증거다. 적은 예산으로 고만고만한 출산장려형 대책만 나열해서는 기대한 만큼의 정책효과는 못 얻을 게 분명하다. ‘무작정 출산정책’만으로는 반쪽짜리에 불과하기에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생산가능인구에 관한 ‘새로운 개념’이 필요하다. OECD가 쓴다고 해서 마냥 따라 할 일이 아니다. 당장 우리나라의 건강한 노인을 보자. 15세에서 64세까지의 인구만 생산가능인구로 본다면, 팔팔한 노인마저도 ‘생산 불가한 자’로 만들어버린다. 100세 사회에 65세 퇴직을 고집한다? 연금으로 35년을 부양하자는 건데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노인과 장애의 개념을 통합한 은퇴와 연금의 종합대책이 필요하다. 사람마다 건강상태가 다를 것이니 개인별 맞춤형으로 하잔 얘기다. 건강수명에 연동한 연금 개시연령의 상향조정과 정년연장, 임금피크제도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과제는 노인들로 하여금 생산 가능하게 만들어주면서도 청년일자리와 배치되지 않을 노인일자리 창출에 관한 창조적 정책화다.
많은 선진국들이 저출산과 고령화를 넘어서면서 활용한 잘 알려진 방책이 이민의 문을 활짝 여는 것이었다. 무늬만 그렇다손 치더라도 반만년을 이어온 단일민족의 신화가 작동하는 한국이다. 이민정책을 통한 생산가능인구의 확대전략이 인기 있을 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현실을 직시하자. 대한민국은 이미 이민사회다. 2015년 첫날 기준, 한국에 90일 이상 거주하는 외국인은 174만명이 넘는다. 결혼과 취업을 목적으로 들어온 영구 체류자가 늘어나는 코리안 드림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글로벌경제의 시대, 이민문제를 백안시해서는 우물 안 개구리다. 경제적 관점에서 중요한 문제는 이민이 유입되더라도 훌륭한 인력이 들어오게끔 제도를 고치는 일이다. 외국인 노동력을 싸구려 일용직 위주로 남용했던 남유럽국가들에서는 외국인 범죄가 증가했다. 포용력 있는 이민정책으로 저출산ㆍ고령화 사회의 생산가능인구 부족현상을 해결한 북유럽의 성공과는 반대의 이야기다.
일ㆍ가정양립과 여성인력의 활용, 적극적인 청년고용의 증대도 중요하지만, 노인과 이민을 포함한 인구정책의 칵테일 처방이 필요한 시점이다. ‘생산가능인구 만들기’는 생각을 바꿔야 답이 보인다.
안상훈 서울대 교수ㆍ사회정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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