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부모 등 150여명 지켜보는 가운데… 패터슨 측 “진범 아니다”
8일 오전 10시33분 ‘이태원 살인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된 미국인 아더 존 패터슨(36)이 서울중앙지법 417호 법정에 들어섰다. 카키색 수의를 입은 패터슨이 젤을 발라 세운 검고 짧은 머리 스타일과 재판부에 건넨 ‘한국식’ 목례가 눈에 띄었다. 형사사건 피고인들이 대개 초췌한 모습인 반면, 지난 달 입국 때와 달리 깔끔하게 면도까지 한 패터슨에겐 불안함과 긴장감이 보이지 않았다.
사건 발생 18년 만에 한국 재판을 받게 된 패터슨을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총 150석의 방청석은 재판 전부터 가득 찼다. 피해자 조중필(당시 22세)씨의 부모, 사건 현장에 함께 있었던 에드워드 리(36)의 아버지도 재판을 지켜봤다. 리의 아버지는 재판 전 “이번 기회에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이 공소사실을 읽으며 조씨가 살해당한 과정을 설명하자, 조씨의 어머니는 눈을 지그시 감고 고개를 떨궜다. 바닥을 향한 채 재판 내내 움직이지 않던 노모의 시선은 패터슨의 변호인이 변론을 하기 시작하고 나서야 움직였다. 조씨의 어머니는 “범행은 리가 환각상태에서 저질렀으며, 이후 교묘하게 진술을 바꿔 패터슨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있다”고 변론하는 오병주 변호사를 빤히 쳐다봤다. 오 변호사는 “리가 거짓말 탐지 당시 혈압ㆍ맥박 등에서 이상 소견을 보였지만, 패터슨은 그러지 않았다”며 “리의 범행이 완벽하게 입증되지 않아 대법원이 무죄 판결을 내린 것이지, 패터슨이 진범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오 변호사는 또 “패터슨은 한국인 홀어머니가 키운 한국 사람”이라며 “패터슨이 감옥에서 어머니의 성경책을 넣어달라고 하고 기도도 해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조씨의 어머니는 재판 후 “미국이 1997년 수사할 때도, 18년 만인 지금도 한국에 패터슨을 넘겨 준 것은 그가 진범이란 의미”라며 “아들과 가족 한을 풀어달라”고 울먹였다.
패터슨은 1997년 서울 이태원의 한 패스트푸드점 화장실에서 조씨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사건 당시엔 리가 단독 살인범으로 몰렸다가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았다. 패터슨은 흉기소지 등의 혐의로 실형을 받았다가 1998년 사면됐다. 그리고 검찰이 실수로 출국금지를 연장하지 하지 않은 틈을 타 1999년 8월 미국으로 도주했다가 지난달 23일 국내로 송환됐다. 다음 공판준비기일은 이달 22일이다.
김관진기자 spiri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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