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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은 삶의 흔적을 기록하는 펜이다

입력
2015.10.08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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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옷의 역사와 미학을 가르치며 ‘스타일’이란 단어에 대해 나름의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건 누군가의 옷차림을 따라하거나, 신체에 맞는 옷의 실루엣과 색을 찾아내는 것 이상의 의미였다. 어원적으로 볼 때 스타일이란 단어는 펜의 뾰족한 끝을 뜻하는 스틸루스에서 왔다. 글을 쓰는 데 필요한 펜과 한 벌의 옷이 만들어내는 정조가 맞물려 있다는 게 신기하지 않은가? 글쓰기와 옷차림, 뭔가 서로 어울리지 않는 행위가 어쩌다 같은 출발점을 갖게 된 것일까?

글쓰기란 오랫동안 내 안에서 삭혀온 감정이나 생각을 종이 위에 활자화하는 일이다. 전체적인 생각을 정리하고 압축해야 하고 마침표와 쉼표, 말줄임표와 같은 문장 부호도 적절하게 써야 한다. 결국 타인들에게 쉽고 깊게 이해될 수 있는 글을 쓰기 위함이다. 독자로선 따분한 글을 읽는 것만큼 힘든 일도 없다. 결국 글은 내용이 너무 과하지도 않고 빠진 것도 없이 리듬감을 갖고 읽혀야 한다. 그래야 독자들이 한숨에 읽어낼 수 있는 흡인력 있는 글이 된다.

여기에서 ‘글’이란 단어를 ‘옷’으로 바꿔보아도 얼추 말이 되지 않는가? 패션이 한 계절을 보내기 위한 소모품이 아니라 우리의 온 삶의 흔적을 기록하는 펜이 된다는 것은 이런 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패션은 입는 것이 아니라 쓰는 것이라고. 개인은 언제나 스스로 삶의 방식을 선택한다. 그것은 곧 스타일의 선택이다. 패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도 “시와 마찬가지로 패션은 어떤 것도 명시하지 않는다. 패션은 그저 제안할 뿐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런 의미에서 패션은 미학적인 자기결정이며 우리 스스로를 창조하기 위해 선택하는 도구다.

나는 내 패션 강의를 듣는 이들에게 항상 숙제를 내준다. 일주일 동안 입은 옷에 대한 기록을 남기도록 한다. 옷차림에 관한 일기를 쓰는 것이다. 옷의 브랜드나 색상, 실루엣에 대한 설명보다, 그 옷을 입고 어떤 경험을 하기 원하는지, 누구를 만날 것인지, 그에게 본인이 어떤 이미지로 각인되고 싶은지에 주안점을 두어 기록하게끔 한다. 이런 글쓰기를 통해 사람들은 옷이라는 사물보다, 그 옷을 통해 얻게 된 경험과 느낌에 더욱 주목하게 된다. 우리는 옷을 입는 행위를 통해 우아하다, 세련되다, 날카롭다, 유순하다 등 자신만의 이미지를 만들고자 노력한다. 문제는 스타일을 선택하는 과정이 쉽지 않다는 것. 그저 내 자신만의 고집을 밀고 나가다간 유행에 뒤떨어졌다는 평을 듣기 일쑤고, 그렇다고 남의 말만 듣고 옷을 샀다간 ‘줏대 없는 쇼핑중독’이란 비난을 사기 쉽다.

왜 이렇게 스타일을 찾고 내 것으로 만들기가 어려운 걸까? 그것은 한 벌의 옷을 둘러싼 선택이 ‘유행’이란 힘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가장 먼저 깊게 생각한 철학자가 있다. 독일의 칸트란 철학자다. 그는 ‘세계 시민의 관점에서 본 보편사의 이념’이란 책에서 인간의 마음에는 두 가지의 뚜렷한 성향이 있다고 설명한다. 곧 스스로를 타인과 구별하면서도 같아지려는 성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인간의 이중적인 성향이 ‘유행’이란 체계를 만들어낸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그는 유행이란 것이 마냥 비난 받아야 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인정과 구별의 욕구는 인간을 나태함과 자기만족의 타성으로부터 벗어나게 할 뿐만 아니라 인간이 지닌 모든 소질을 계발시키고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도덕적 판단능력을 고양시킨다”는 것이다. 유행의 미덕을 이처럼 말끔하게 정리한 말이 있을까? 패션은 한 사회의 분위기를 표현하고 수용하는 집단의 열망이다. 우리의 옷차림은 바로 지금, 찬연한 현재에 대한 긍정이며 수용이어야 한다. 트랜드를 따른다는 것은 내가 현재를 살아가고 있음에 대한 가장 강력한 긍정임을 다시 한번 깨닫자. 단 나만의 감각으로 현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도 필요하다.

김홍기ㆍ패션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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