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길이 열리면 옛길은 숲이 된다. 그 길과 함께 했던 수많은 삶의 흔적도 자연스레 숲에 묻힌다. 강원 횡성에는 2차례나 새 도로가 나면서 주민들에게도 잊혀진 ‘명품숲’길이 있다. 횡성군 안흥면과 평창군 방림면을 연결하는 고갯길 문재(해발 815m)를 넘는 경강도로는 1975년 영동고속도로가 뚫리면서 급격하게 역할이 줄었다. 거기에 1995년 고개 아래로 터널이 뚫리면서 국도로서의 역할도 막을 내리고, 길은 다시 숲이 되었다. 숲의 복원력은 망각의 시간만큼 빨랐다. 명품 숲으로 거듭나기까지 제대로 된 이름하나 갖출 새도 없었다. 공식 명칭은 없지만 인근 주민들은 ‘사재산 명품숲길’로 부른다.
‘명품’은 수식어로나 쓰이지 고유명사로는 부적합하다. 소나무나 낙엽송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도 안내 팻말은 ‘낙엽송 소나무 명품숲’이다. 시작은 안흥에서 방림으로 이어지는 42번 국도 문재터널을 약 2.5km앞둔 지점이다. 안내 표지라고는 흔해빠진 장승 하나가 전부고 관광안내책자에도 나와있지 않기 때문에 일부러 찾지 않으면 지나칠 수밖에 없다. 정확한 주소는 횡성군 안흥면 상안리 217번지다. 횡성에서도 잊혀진 곳이나 다름없지만 길의 유래는 오래다.
조선 중종 때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고형산(1453~1528)이 오솔길이던 산길을 우마차가 다닐 수 있을 만큼 넓혔다. 우찬성까지 지내고 어머니 병간호를 위해 자청해서 관찰사로 내려와 공을 들인 이 일 때문에 사후 부관참시에 비석까지 목이 잘리는 수난을 겪는다. 병자호란 때 조선을 침공한 청나라 병사들이 이 길로 한양에 쉽게 닿을 수 있었고, 이로 이해 인조가 오랑캐의 나라 청에 머리를 조아리는 수모를 당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1970년대까지도 이 길은 서울과 강릉을 연결하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동해의 해산물이 이 길을 통해 내륙으로 전달됐고, 내륙의 생필품이 문재를 넘어 동해안 지역으로 전파됐다. 그 때문에 고개 아랫마을인 안흥에는 일찍부터 벼슬아치의 행차와 부임 때 마필(馬匹)을 공급하던 역(驛)이 설치됐다. 일제 강점기엔 목재를 실어내기 위해 차량이 다닐 만큼 길을 넓혔다. 안흥은 횡성에 버금갈 만큼 오가는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여관과 식당이 번성했다. 이름값 때문에 소송까지 치렀던 ‘안흥찐빵’도 1960~70년대 싼값으로 배를 채울 수 있는 먹거리로 등장했다.
그러나 1975년 영동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안흥도 급격하게 쇠락하고, 경강도로도 국도로서의 역할이 크게 줄어들었다. 1995년에는 문재 아래로 터널이 뚫리면서 도로의 기능을 상실하고 산림을 관리하는 임도로 전락했다. 지금이야 국도를 새로 내면 왕복 4차선이 기본이지만 이 길은 폐쇄될 때까지도 비포장 ‘신작로’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비가 와서 골이 패이면 마을 주민들이 삽과 괭이를 들고 땅을 골라야 했다. 1960년대에는 강릉으로 수학여행을 떠난 안흥국민학교 학생을 태운 버스가 낭떠러지에 굴러 많은 학생들이 숨진 일도 있었다.
안흥면사무소 앞에서 찐빵가게를 운영하는 김동춘(72)씨의 기억은 조금 더 구체적이다. “골짜기마다 집들이 많았어. 화전민들이 밭을 일궜으니까. 지금 낙엽송(일본잎갈나무)과 잣나무가 심겨진 곳은 모두 화전민 밭이라고 보면 돼요.” 도로는 백덕산(해발 1,350m) 자락인데 주민들이 사재산(四財山)으로 부르는 이유도 덧붙였다. 예부터 이 산엔 4가지 보물(산삼, 석청, 참옻나무, 전토)이 있다고 해서 그렇게 불렀단다. 국토지리정보원의 한국지명유래집에는 벌꿀인 석청이 빠져있고 ‘동칠(東漆ㆍ동쪽의 옻나무), 서삼(西蔘ㆍ서쪽의 산삼), 흉년에 먹는다는 남토(南土)와 북토(北土)’를 4가지 보물로 꼽고 있다. 흙이 2번이나 언급된 걸 보면 배고팠던 시절에는 무엇보다 허기를 채울 수 있는 게 최고의 보물이었겠다. “산꼭대기에 올라가면 아주 보드라운 흙이 있어. 고와서 채로 칠 필요도 없었지. 그것을 파다가 다른 곡물가루와 섞어 개떡처럼 넓적하게 만들어 쪄먹었어. 좋은 맛도 나쁜 맛도 없고 무(無)맛이야. 흙 맛도 안 나고. 배탈은 없지만 많이 먹으면 변비가 생겨.” 진흙으로 과자를 만들어 먹는다는, 해외 토픽에나 나올 이야기가 불과 수 십 년 전 사재산 자락의 생활상이었다.
산골 주민들의 애환이 깃든 이 길이 ‘명품숲’으로 지정된 것은 2010년. 산림청에서 산림과 경관이 우수한 곳을 대상으로 ‘명품숲’을 지정했는데, 이 과정에서 고유지명은 쏙 빠지고, 주요 수종의 이름을 따 ‘낙엽송 소나무 명품숲’으로 명명했다.
겉보기엔 강원도에 흔해빠진 산 중의 하나일 뿐이지만,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분위기가 다르다. 길 양편을 하얗게 장식한 자작나무 기둥에 울긋불긋 담쟁이가 타고 오르는 모습부터 예사롭지 않다. 약 2km를 돌아 오르면 오른편으로 아름드리 낙엽송 군락이 빼곡하다. 최고 높이 37m에 가슴높이 지름이 60㎝에 달하는, 흔치 않은 낙엽송 숲이다. 1938년 일제강점기부터 가꾸기 시작했다니 수령이 80년에 가깝다.
숲 속 탐방로도 잘 닦아 놓았다. 인공림인 낙엽송 숲을 지나면 천연림인 소나무 숲으로 연결된다. 두 개의 숲 사이에는 공연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무대와 관람석까지 갖춘 야외 학습장도 만들었다. 이런 시설이 필요할까 싶을 정도로 과한데 거의 알려지지 않은 것도 놀랍다. 안내판은 ‘국내 최초로 조성한 명품 숲’이라고 자랑하지만 알리고 이용하는 데는 소홀했던 모양이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문재 정상까지 이르는 구간에 잣나무와 철쭉 길을 포함해 탐방로만 4개 코스 12km에 달한다. 곳곳에 설치한 전망대에서는 옹색한 산골마을의 가을풍경부터, 첩첩이 겹쳐진 웅장한 산세까지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온갖 종류의 쑥부쟁이와 미역취 뚝갈 등 화사한 가을 꽃까지 그늘 짙은 도로를 따라 이어져 걷는 즐거움을 더한다.
한나절 걷기에는 숲 입구에서 문재 정상까지 약 5.6km 구간이 적당하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산길 경사도 완만해 땀을 흘리지 않아도 될 정도다. 문재 정상에 닿으면 그제야 이 길이 한때는 흙먼지 폴폴 날리면서도 국토의 대동맥이었던 경강도로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방림 18km’라고 쓴 42번 국도 팻말은 페인트가 거의 다 벗겨져 옛 영화를 기억하듯 처연하다. 바로 아래 석재 표지판에는 진행방향과 함께 계촌(14km), 운교(6km), 하일(22km)이라고 쓴 이정표가 보일 듯 말 듯 숨어있다. 길은 끝나는 곳에서 다시 시작된다.
횡성=최흥수기자choissoo@hankookilbo.com
[여행메모]
●사재산 명품 숲길을 관할하는 북부지방산림청에서는 봄·가을 약 2개월간 산불예방을 위해 입산을 통제한다. 올해는 10월 15일부터 12월 15일까지 입산을 통제할 예정이다. ●명품 숲길을 오르다 약 4km지점에서 오른편으로 상안리까지 임도가 나 있는데 총 30km에 달해 걷기에는 무리고 자전거로는 도전해 볼 만 하다. ●횡성읍 섬강 둔치에서는 11일까지 제11회 횡성한우축제가 열린다. 대형 ‘한우 셀프 식당’에서 다양한 횡성한우 요리를 맛볼 수 있고, 머슴돌경연대회, 소 밭갈이, 한우품평회 등 다채로운 체험행사도 즐길 수 있다. 소방서와 우체국 앞 임시주차장에서 행사장까지 셔틀버스도 운행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