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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 정지용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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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 정지용 ‘비극’

입력
2015.10.07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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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흰 얼굴을 본 적이 있느냐?

그 손님의 얼굴은 실로 미(美)하니라.

검은 옷에 가리워 오는 이 고귀한 심방에 사람들은 부질없이 당황한다.

실상 그가 남기고 간 자취가 얼마나 향그럽기에

오랜 후일에야 평화와 슬픔과 사랑의 선물을 두고 간 줄을 알았다.

그의 발 옮김이 또한 표범의 뒤를 따르듯 조심스럽게 가리어 듣는 귀가 오직 그의 노크를 안다.

묵(墨)이 말라 시가 써지지 아니하는 이 밤에도

나는 맞이할 예비가 있다.

일찍이 나의 딸 하나와 아들 하나를 드린 일이 있기에

혹은 이 밤에 그가 예의를 갖추지 않고 올 양이면

문밖에서 가벼이 사양하겠다!

- 정지용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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