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흰 얼굴을 본 적이 있느냐?
그 손님의 얼굴은 실로 미(美)하니라.
검은 옷에 가리워 오는 이 고귀한 심방에 사람들은 부질없이 당황한다.
실상 그가 남기고 간 자취가 얼마나 향그럽기에
오랜 후일에야 평화와 슬픔과 사랑의 선물을 두고 간 줄을 알았다.
그의 발 옮김이 또한 표범의 뒤를 따르듯 조심스럽게 가리어 듣는 귀가 오직 그의 노크를 안다.
묵(墨)이 말라 시가 써지지 아니하는 이 밤에도
나는 맞이할 예비가 있다.
일찍이 나의 딸 하나와 아들 하나를 드린 일이 있기에
혹은 이 밤에 그가 예의를 갖추지 않고 올 양이면
문밖에서 가벼이 사양하겠다!
- 정지용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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