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태풍도 비켜가…서울·경기 올해 누적강수량 평년의 43%에 불과
내년 봄까지 가뭄 지속예상…"장기적 대책 필요"
전국 대부분 지방이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이번 가뭄은 서울·경기와 강원도, 충청도 등 중부 지방에서 심각하다.
7일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부터 이달 1일까지 전국의 누적 강수량은 754.3㎜로 평년(30년 평균치·1,189㎜)의 63%에 그쳤다.
서울·경기의 누적 강수량(517.7㎜)은 평년의 43%에 불과해 가장 낮았다.
그밖의 지역은 충남(572.4㎜) 50%, 강원(634.1㎜) 52%, 충북(612.5㎜) 53%, 전북(668.6㎜) 58%, 경북(628.8㎜) 62% 등의 수준이었다.
남부 지방의 경우 상대적으로 강수량이 양호한 편이었다. 평년과 비교해 전남(1,083.7㎜)은 84%, 경남(1,071.9㎜)은 80%를 기록했다.
기상청은 "연평균 강수량의 80% 수준이면 강수량이 적기는 하지만, 가뭄으로 볼 정도는 아니라고 통상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 북태평양고기압 발달 미진…장마·태풍도 비켜가 '설상가상'
이번 가뭄의 1차적인 원인은 여름 장마에 비가 적었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7∼9월에 한반도에 영향을 주는 태풍도 올해는 우리나라를 비켜갔다.
여름 비가 적었던 것은 우리나라 강수에 영향을 주는 북태평양고기압이 활성화되지 않은 탓이 크다.
기상청 방재기상팀 김진철 예보관은 "북태평양고기압이 북쪽으로 올라갔다가 남쪽으로 내려오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세력·전선을 형성해야 비가 많이 오는데 올해는 그렇지 못했다"고 말했다.
민간기상업체 케이웨더의 반기성 예보센터장은 "통상 우리나라는 여름에 한 해 강수량의 70%가량을 기록하는데, 올여름에는 평년의 절반 정도에 그쳤다"고 말했다.
특히 7∼9월 강수량만 놓고 보면, 서울은 평년의 38%, 대전은 29% 수준에 불과했다는 게 케이웨더 측 설명이다.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엘니뇨 현상에 따른 영향이 거론된다. 일반적으로 엘니뇨가 나타나면 북태평양고기압의 세력이 약해진다.
엘니뇨는 감시구역(북위 5도∼남위 5도, 서경 120∼170도)의 해수면 온도가 수개월 넘게 평년보다 0.5도 높아지는 현상이다. 기상학계는 올해 2월부터 엘니뇨 현상이 심해지고 있으며, 당분간 점차 발달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반 센터장은 "지난해부터 발달한 엘니뇨로 인해 북태평양고기압이 활성화되지 않았고 이것이 강수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북태평양고기압이 발달하지 못해 장마 전선이 활성화되지 않았고, 북태평양고기압이 남부 쪽에 처져 있을 때가 잦다 보니 기압골이 형성돼 우리나라 전반에 비가 내리는 패턴도 형성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그는 "지난해부터 엘니뇨가 발달하면서 북태평양고기압이 덜 발달한 것으로 보인다"며 "태풍은 북태평양고기압을 따라 이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게 약하다 보니 올해 태풍도 일본, 필리핀, 중국 등 다른 지역으로 많이 갔다"고 말했다.
◇ 2006년 이후 거의 해마다 가뭄...일각에서 128년 주기설도 나와
기상청에 따르면 국내에선 보통 2∼3년에 한 번씩 크고 작은 가뭄이 발생했다. 하지만 2006년 이후로는 거의 매년 가뭄 현상이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가뭄에 대한 정의는 명확하지 않고, 보는 관점에 따라 다소 다르다.
'기상학적 가뭄'은 비가 적게 오는 현상이다. 비가 평년 대비 얼마나 적었느냐가 판단 기준이다.
이 단계를 지나면 농사에 불편을 느끼는 '농업적 가뭄'으로 진행된다.
더 심화하면 '수문학적 가뭄'이 된다. 댐에 물이 부족해서 생활·농업 등 각종 용수가 부족해지는 현상이다.
단, 비가 적었더라도 평소 저수 등을 통해 축적한 물이 많으면 가뭄을 느끼는 정도는 달라질 수 있다는게 기상청 설명이다.
올해는 이미 댐의 저수량이 부족한 상태에서 비까지 적게 내리면서 총체적으로 가뭄 현상이 심화했다.
가뭄의 원인은 크게 ▲ 강수량 부족 및 온도 상승으로 인한 물 부족 ▲ 6∼9월 강수량이 예년보다 부족할 경우 ▲ 장마 및 태풍이 우리나라에 영향을 적게 줄 경우 ▲ 전 세계적인 엘니뇨, 라니냐 등 이상기후에 따른 변화 등이 손꼽힌다.
학계는 변희룡 부경대 환경대기학과 교수 등을 중심으로 일부에서 한반도가 역사적으로 볼 때 일정 주기마다 극심한 대가뭄을 맞이했다는 '주기설'을 주장한다. 크게 6년, 38년, 124년마다 대가뭄이 온다는 설이 있다.
변 교수는 "올해의 경우 38년 주기에 해당하는 해"라며 "이번 가뭄은 내년 6월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되므로 국가적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 내년 봄이 '고비'…"가뭄 장기화 대비해야"
문제는 당장 가뭄이 크게 개선될 가능성이 적다는 점이다.
기상청은 최근 발표한 10∼12월 기상 전망에서 올겨울에 강수량이 평년과 비슷하거나 다소 많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절대적인 양이 많지 않기 때문에 해갈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서울·경기를 예로 들면, 1,200㎜ 이상 비가 와야 평년 수준이라고 볼 수 있는데, 현재로는 한참 못 미칠 것으로 예상한다. 다른 지역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기상청의 설명이다.
다만, 통상 봄이 되면 강수량이 많아진다는 점이 변수다.
봄이 되면 온도가 높아지면서 수증기의 양이 많아지기 때문에 비구름대의 변동성이 커진다. 이로 인해 비의 양도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봄에 비가 많이 내려도 현재의 가뭄을 해소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반기성 센터장은 "내년 장마철이 오기 전까지는 가뭄이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며 "이번 겨울과 내년 봄에 비가 온다고 하더라도 전체적인 가뭄의 해결을 기대하기는 어려우니 정부 차원에서 관계부처가 장기적인 가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변 교수도 "가뭄 대책이 부처별로 나뉘어 있고 정책을 총괄할 컨트롤 타워가 보이지 않는다"며 "지금은 큰 강이 별로 없는 충청 지역의 피해가 크지만 내년까지 서울·경기와 경상도 등으로 피해가 확산할 수 있으니 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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