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위 조작 브로커 고발해도 돈주고 구매 주장하면 처벌 못해
관련 법률안 2년째 국회서 표류… 단속·규제 심의기구 설립 어려워
"실시간차트가 문제" 제기에도 음원유통사들은 개선 소극적
가요계가 음원사재기로 시름 중이다. 최근 한 신인 그룹을 둘러싸고 음원사재기 의혹이 제기되고, 박진영과 이승환 등이 방송에 나와 “음원사재기는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하면서 논란은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음원사재기란 출판사가 책을 사재기해 베스트셀러 순위를 조작하는 것처럼 음원사이트에서 차트 순위를 올리기 위해 저작권자 등이 불법 기기로 해당 음원을 집중적으로 재생하거나 다운받는 것. 브로커가 음원차트 1위를 시켜 주겠다며 기획사에 먼저 접근하거나, 신인일 경우 5억원의 비용을 요구한다고 가요관계자들은 말한다. 한국음악콘텐츠산업협회(이하 음콘협)가 5일 사재기 신문고 운영 등 ‘음원사재기 근절을 위한 4가지 대책’을 내놓았지만, 업계의 표정은 밝지 않다. 이미 2013년 SM·YG·JYP엔터테인먼트와 스타제국이 사재기 브로커를 검찰에 고발했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된 전례가 있고, 정부가 내놓은 사재기 근절 대책조차 전혀 먹히지 않았던 탓이다.
음원사재기 논란이 반복되는 것은 법적 제도가 아직 없기 때문이다. 최태영 음콘협 과장은 “법률 검토를 의뢰해보니 음원사재기를 적발해도 ‘정당하게 돈을 주고 구매했다’고 주장하면 처벌이 어렵고, 영업방해에 해당되지도 않는다고 한다”며 “음원사재기를 처벌할 수 있는 법이 마련되는 게 필수”라고 말했다. 사재기를 하다 적발되면 2,000만원 이하의 벌금 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는 출판계(출판문화산업진흥법)처럼 음악시장도 법적인 근거가 마련돼야 근절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법적 근거가 없어 음원사재기를 단속하고 규제할 수 있는 심의기구 설립도 어렵다.
사실 관련 법률안이 국회에 제출됐으나 2년째 통과가 되지 않고 있는 게 문제다. 강은희 새누리당 의원과 최민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등이 2013년 음원사재기 처벌 등을 포함한 ‘음악산업진흥에 관한 법 개정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계류 중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와 음콘협은 “국회에 긴밀한 협조를 구할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이 문제가 언제 해결될지는 미지수다. 더불어 수사기관의 적극적인 수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양현석 YG 대표는 최근 취재진과 만나 “예전에 다른 기획사들과 함께 음원사재기 사건을 수사해 달라고 고발한 적이 있었는데 흐지부지됐다”며 “음원사이트 데이터만 조사해 봐도 알 수 있을 텐데 수사기관이 관심이 없는 듯하다”고 말했다.
음원 유통 시장의 체질 개선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가요기획사 관계자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이 실시간 차트다. 대형 가요기획사의 고위 관계자는 “음원사이트가 실시간 차트를 운영하는 것이 음원사재기를 부추기는데, 음원유통사들은 (영업을 위해 없애지 않고) 뒷짐만 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문체부는 2013년 음원사재기 근절 대책을 발표하며 음악차트 왜곡 방지 수단으로 ‘실시간 차트 지양’을 내걸었지만, 업계의 실시간 차트 활용은 더 강화됐다. 국내 최대 음원사이트인 멜론은 5분 단위 점유율로 다음 시간의 순위를 예측하는 ‘5분 차트’를 만들었고, 당일 음원 차트 1·2·3위는 시간대별로 실시간 점유율 그래프를 공개한다. 또 다른 가요기획사 관계자는 “멜론은 실시간 점유율이 급격히 상승한 음원에 ‘지붕킥’이란 표현까지 써서 음원 경쟁을 지나치게 부추긴다”고 꼬집었다. 음콘협 측은 “실시간 차트와 사재기의 연관성을 연구하고 개선 방안을 도출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음원사이트 운영사가 민간업체인데다 차트 운영 방식까지 제재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털어놨다.
2014년 실시된 개인정보보호법 강화가 되레 음원사재기를 방지의 장애물이 됐다는 목소리도 있다. 한 음원유통사 관계자는 “음원사이트 가입 시 주민등록번호 수집을 제한하면서 이메일 주소만으로 가입할 수 있어 음원 사재기가 쉬워졌다”고 하소연했다.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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