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 지도부는 모처럼 ‘공천권을 국민에게’라는 명분을 앞세워 미국식 ‘오픈 프라이머리’에 기반을 둔 하향식 공천제도 도입에 공감했다. 그 이후 여야가 ‘안심번호 공천제’라는 온라인 판 ‘오픈 프라이머리’에 합의했으나, 청와대의 반대에 다시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도대체 오픈 프라이머리가 무엇인지 원조인 미국에서 어떻게 운영되지 따져보자.
여야 지도부는 미국 정당의 공직선거 후보자 선출제도 중 ‘오픈 프라이머리’가 대세인 것처럼 말하고 있으나 사실이 아니다. 민주ㆍ공화당의 연방의원 후보 결정을 놓고 보면 ‘오픈 프라이머리’를 채택한 비율은 3분의1에 불과하다.
미국 각 주 별로 실시 중인 예비선거 제도는 당원 혹은 정당 지지자들에게만 허용하는 ‘클로즈드 프라이머리’에서부터 아예 정당 참여를 배제하는 ‘상위 2인 진출방식’(Top-tow-vote-getter Primary) 등 그 스펙트럼이 지역에 따라 다양하다.
미국에서 이처럼 다양한 공직후보 선출방식이 운용되고 있는 건 후보 선출의 개방성과 민주성을 확보한다는 원칙은 같지만, 각 주의 상황과 시행 착오를 수정하는 과정이 제각각 달랐기 때문이다. 예비선거제가 처음 도입된 뒤 현재처럼 정착되는 데에는 100년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1905년 위스콘신주에서 최초로 정당이 예비선거를 통해 대선 후보자를 선정하는 내용의 주법이 제정된 뒤 1916년에는 한때 20개주로 확대됐다. 그러나 대공황에 따른 경제난으로 정당개혁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면서 예비선거를 채택한 숫자도 감소했다.
이후 지금과 같은 프라이머리의 원형은 1950년대를 지나면서 싹을 띄웠고 68년 민주당 전당대회를 계기로 정착됐다. 당시 집권 민주당은 거센‘반전(反戰) 민심’에 밀려 결국 재선을 포기한 린든 존슨 대통령이 대신 월남전 지지 후보를 지원하겠다며 영향력을 발휘해 시카고 전당대회에서 대의원 투표를 통해 허버트 험프리 부통령을 후보로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밀실 결정에 반대하는 반전주의자와 험프리 파 당원 사이에 유혈 폭력 사태가 벌어졌고, 이 같은 민주당 내분에 힘입어 공화당 리처드 닉슨 후보가 손쉽게 대통령이 됐다. 이후 민주당은 민심과 동떨어진 후보를 내놓지 않기 위해 프라이머리 투표권의 비 당원에게 넓히는 개혁에 나섰고, 공화당 역시 맞대응하면서 프라이머리 제도의 문호가 점차 넓어지기 시작했다.
현재 미국에서 우리 식으로 말하면 ‘공천’과 비슷한 ‘공직선거 후보선출을 위한 예비선거 제도’는 그 대상이 연방의원이냐 대통령 선거인단이냐에 따라 다르다. 대통령 후보 선거인단 선출에서는 아이오와주 등에서처럼 당원들의 공개 회합 방식인 ‘코커스’(Caucus)를 선택하는 경우도 있지만, 연방의원 후보는 비밀투표가 이뤄지는 프라이머리 방식으로 지명된다.
미국에서는 프라이머리에 참여하는 유권자와 선택을 기다리는 후보자의 정파를 어떻게 분류하느냐 따라 프라이머리의 종류도 구별된다. 한국 정치권에서 주목하는 ‘오픈 프라이머리’는 이들 방식 가운데 한 가지에 불과할 뿐이다.
참가하는 유권자 자격을 당원 혹은 선거인 명부에 각 당의 지지자로 등록한 사람에게만 제한하고, 후보자도 자신의 소속 정당을 정확하게 밝히고 진행할 경우 ‘클로즈드 프라이머리’로 분류된다. 미국 선거관련 시민단체 ‘페어 보트’(Fair Vote)에 따르면 민주당과 공화당 중 ‘클로즈드 프라이머리’방식으로 후보를 정하는 곳은 콜로라도와 코네티컷 등 21개 주에 달한다.
당원 혹은 지지자 이외에 상대 정당 지지자를 제외한 일반 유권자 참여도 허용하는 ‘세미 클로즈드 프라이머리’를 채택한 경우도 많다. 웨스트버지니아 주 등 11개 주에서 이런 방식의 프라이머리가 치러진다.
주요 정당 중 한 군데라도 ‘오픈 프라이머리’방식으로 연방의원 후보를 정하는 곳은 텍사스와 버지니아 등 20개 주다. 프라이머리 참여 자격을 제한하지 않으므로 해당 정당의 당원ㆍ지지자는 물론이고 일반 유권자, 심지어 상대 정당 당원과 지지자도 참가할 수 있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대통령 후보로 뽑는 민주당 행사장에 공화당 후보로 나선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가 나타나 투표하는 것도 가능하다.
캘리포니아, 워싱턴, 루이지애나 주에서는 앞선 세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 방식으로 각 당의 연방 의원 후보를 선출한다. 캘리포니아와 워싱턴 주에서는 2010년부터 프라이머리에서 정당 색채를 완전히 지워버린 ‘상위 2인 진출방식’(TTVG) 프라이머리를 실시 중이다. 이 방식은 모든 유권자에게 프라이머리 투표를 허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공직 후보 출마자들에게 소속 정당을 공개하지 않도록 한다. 이 경우 같은 정당의 1, 2위 득표자가 최종 선거일에 또다시 대결할 수도 있다. 친한파 의원으로 유명한 마이클 혼다 의원(캘리포니아 제17 선거구)이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같은 민주당 소속 로 카나 후보와 프라이머리와 본선에서 연속 대결해야 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루이지애나주는 아예 정당 후보를 걸러내는 프라이머리를 실시하지 않는다. 누구나 짝수 해 11월에 치러지는 본선 투표에 출마할 수 있다. 다만 출마자 난립의 폐해를 막기 위해 11월 선거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나오지 않으면 상위 1, 2위 득표자를 대상으로 12월 결선 투표를 진행한다.
결국 미국 정당의 공천권 행사제도의 역사를 살펴보면 특정 정당의 공천권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행사하느냐는 당시의 시대적 요구 속에서 정당이 얼마나 유권자의 요구를 정확히 반영하느냐에 따라 변화하는 것일 뿐 영구불멸의 정답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 변화는 소수 당지도부가 독점해오던 공천권이 점점 더 보다 많은 유권자에게 이양되는 방향이었으며, 이런 변화에 순응하는 정당이 선거에서 승리했다는 것이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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