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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위기의 특수수사

입력
2015.10.05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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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이상득 전 의원이 포스코 비리를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에 불려 나와 조사를 받았다. 전 정권 실세이긴 해도 대통령 친형의 전횡이 드러난다면 나름의 수사 성과라 할 수 있지만 ‘평년작’ 평가 이상을 주긴 어렵다. “과연 이게 환부만 도려내는 외과식 특수수사냐”는 지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지난 3월 요란하게 시작한 포스코 수사는 그룹 수뇌부에 대한 영장이 잇따라 기각되면서 한동안 표류했다. 비리의 정점으로 지목된 전 회장은 네 차례 소환 조사를 받았지만 수사 착수 7개월이 지나도록 아직 이렇다 할 신병처리 방침이 발표된 게 없다.

전 정권 인사로 분류되는 농협중앙회장을 겨냥해 지난 7월 시작한 수사도 아직은 주변부에서 맴돌고 있다. “3주 정도 두들겨 맞으면 끝날 줄 알았다”던 농협 내부의 관측은 완전 오판이었다. 대출 비리로 시작한 수사는 협력업체 비리로 옮겨 가며 우왕좌왕하고 있지만 아직 수사의 최종 윤곽은 희미하다. “이제 보니 검찰이 처음부터 손에 뭘 쥐고 들어온 것 같지 않고, 한번 해보다 안 되니 뭐라도 찾으려 다른 쪽으로 옮겨간 느낌”이라고 농협 사람들은 말한다.

2년 전 폐지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가정은 의미 없지만 적어도 이런 수모는 덜 했을 것이다. “중수부는 평상시 대략 100명의 인원으로 움직였던 조직이다. 일반 특수부가 검사, 수사관, 파견인력 포함해 20여명으로 구성된 것과 비교된다. 하지만 화력은 5배가 아니라 50배였다.” 중수부에 오래 근무한 베테랑 수사관의 회고다. 실제로 중수부의 힘은 화력의 집중에서 나왔다. 적게는 100명, 많게는 150명의 본진이 한꺼번에 밀어닥치면 제 아무리 상대가 철벽 수비를 해도 틈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지금처럼 일부 사람만 조사해 돌려보낸 뒤 다음 순서의 사람을 이어 조사해야 하는 상황과는 차원이 다른 싸움이었다.

그 때와 비교하면 지금 특수부의 성적표는 초라하기 그지 없다. 중수부 시절 추억담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 2013년 4월 23일 중수부의 현판이 32년 만에 철거돼 역사관으로 보내졌을 때 마침 검찰을 출입하고 있었다. 당시 논란 끝에 사라지는 중수부를 지켜보며 “국민의 불신을 감안하면 불가피하지만 수사 공백은 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현판 하강 행사에 참석했던 이동열 특별수사체계개편추진 TF팀장은 “우리의 드높은 자부심의 반대편에서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에 대한 불신이 자라고 있었음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한탄했다.

그렇다면 지금 검찰의 모습은 어떤가. 안타깝게도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목표는 아직 요원하다. 검찰 독립을 명분 삼아 ‘검사와의 대화’에서 대통령과 맞짱 뜨기를 마다 않았던 검사들이 지금은 권력에 순종적인 모습으로 돌아왔다. 정윤회 문건, 성완종 게이트 등 살아 있는 권력을 겨냥한 수사는 모두 청와대가 내려준 가이드라인 안에서 정리되기 일쑤다. 야당 인사에 대한 수사가 날이 서 있는 것과 비교된다. 공교롭게 지금 특수부가 화력을 집중하는 포스코, 농협, KT&G 수사도 죄다 전 정권 인사가 타깃이다.

요새 사법시험 폐지의 정당성을 논할 때 자주 회자되는 우스갯소리가 “개천에서 용 났지만 그 용들은 개천을 버렸다”는 말이다. 기득권 세계에 편입돼 거악을 외면하고 거액 수임료로 배를 불린 세태를 풍자한 것이다. 그래도 과거엔 가난한 집 자제가 사시에 합격해 검사가 된 뒤 사회 정의를 위해 부패와 맞서 싸운다는 로망이 있었다. 드물지만 현실에서도 대선자금 같은 수사가 그런 평가를 받았다. 엘리트 관료주의에 함몰되어간 검찰 조직이 국민과 만나는 유일한 접점이 바로 특수수사였던 셈이다. 중수부 현판식 당시 자료를 다시 찾아 보니 새로운 특별수사체계를 구상하며 검찰이 제시한 제1원칙도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권력이 아닌 국민의 칼이 되어 거악과 맞서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마지막 희망의 끈마저 흔들리고 있다.

김영화기자 yaa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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