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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ㆍ사유는 가고 우울한 나르시시스트만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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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ㆍ사유는 가고 우울한 나르시시스트만 남아”

입력
2015.10.05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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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저서 ‘에로스의 종말’을 내고 5일 기자간담회를 가진 한병철 베를린예술대 교수는 “독일에서도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는 철학자가 줄어들고 있다”며 “대학 전체가 탈정치화하고 학생들은 어린아이처럼 변하는 모습이 안타까워 때로 강의에서 큰 소리를 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새 저서 ‘에로스의 종말’을 내고 5일 기자간담회를 가진 한병철 베를린예술대 교수는 “독일에서도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는 철학자가 줄어들고 있다”며 “대학 전체가 탈정치화하고 학생들은 어린아이처럼 변하는 모습이 안타까워 때로 강의에서 큰 소리를 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채 오직 자기 자신에만 빠져 침몰하고 있습니다. 난민 문제만 해도, 한국에서 어떤 도덕적 책임감도 느끼지 못한 채 남의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에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피로사회’와 ‘심리정치’ 의 저자 한병철(56) 베를린예술대 교수가 신작 ‘에로스의 종말’(문학과 지성사) 출간을 기념해 5일 서울 중구 한 식당에서 가진 간담회에서 이 같이 강조했다. 2013년 출간돼 유럽 전역에서 주목 받은 독일어판을 번역한 책에는 올 초 알랭 바디우가 쓴 불어판 서문도 수록했다. 전작 ‘피로사회’와 ‘심리정치’가 각각 성과사회의 명령 아래 자기착취에 중독된 현대인의 모습과, 자유롭다는 착각 속에 신자유주의 질서에 통치 당하는 욕망을 꿰뚫는 분석이었다면, 이번에는 타자에 대한 인식을 상실한 채 병적 나르시시즘에 빠진 현대인의 증상에 주목했다.

한 교수는 “그저 ‘할 수 있다’는 강박에 빠진 우울한 성과주체로서의 개인들이 타인과의 에로스 대신 나르시시즘, 자기 자신의 늪에 침몰해 익사하고 있다”며 “타인은 그저 ‘좋아요’(페이스북)나 눌러 주는 자기 자신의 거울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이어 “사회의 포르노화를 통해 타자가 그저 성적 대상이 되고, 신자유주의 성과사회의 명령으로 연대가 약화됐기 때문”이라며 “남을 느끼지 못하니 자신도 느끼지 못해 비롯되는 공허의 부작용이 극심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원저 출간을 앞둔 2013년 즈음 독일에서 큰 사회문제로 부각된 10대들의 자해현상을 언급하며 “나 자신을 느낄 수 없기 때문에 자기 만의 방에 갇혀 면도칼로 몸을 긁는 10대들이 등장했고, 각종 조사에서 자해 경험이 있는 아이들이 20%로 추산됐다”며 “공허를 극복하기 위해 홀로 셀카를 계속 찍어대는 것이 이와 동떨어지지 않은 같은 현상이라고 본다”고 분석했다.

무한경쟁의 사회에서 개인이 자신을 잘 경영해서 절대적 손실,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받지 않겠다는 생각만으로 달려가고 있는 터라, 누구도 사랑에 급습당하지 않은 채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즉 “사랑도 사유도 가고, 우울한 나르시시스트들만 남아있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무엇보다 자본주의, 신자유주의의 시스템 자체가 연대, 에로스의 회복을 힘들게 하는 상황에서 한 개인이 이를 극복하기 어려운 실정”이라면서도 “이 같은 현실 인식이 완전히 다른 사회를 향한 욕망을 도래시킬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병철 베를린예술대 교수는 "오늘 날 모든 삶의 영역에서 타자의 침식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며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다수의 사람들이 이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한병철 베를린예술대 교수는 "오늘 날 모든 삶의 영역에서 타자의 침식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며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다수의 사람들이 이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그는 시리아 난민 문제 개입에 소극적인 국내 여론에도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한 교수는 “희토류 등을 얻기 위해 아프리카 독재에 눈감고 빈민 양산에 기여한 세계 경제주체들은 난민 문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가해자”라며 “글로벌 경제의 한 주체인 한국도 당연히 지중해를 건너는 난민들의 고통에 책임을 느끼고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또 “난민 문제, IS의 테러 문제 등은 모두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확대와 뗄 수 없는 동전의 양면 같은 개념”이라며 “독일을 비롯해 많은 학자들이 마치 다른 평행우주에 살고 있는 양, 이런 문제에 침묵하고 연구비를 타는 데만 관심을 두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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