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테면 태백산맥 깊은 곳에 오지 마을이 있다고 치자. 버스는 물론 자가용도, 심지어 경운기나 오토바이도 오가기 불가능하다. 걸으려면 높은 봉우리 몇 개를 넘어야 한다고 한다.
거기에 2,000명 정도가 살고 있는데 유일한 교통수단은 하루에 두 번 오는 기차이다. 이런 경우 기차는 그들 삶에서 절대적인 역할일 수밖에 없다. 사소하거나 비상식적인 이유로 기차가 오지 않으면 절대 고립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꼭 필요한 물품 구입에 곤란을 겪고 몸이 아파도 고스란히 견뎌내야 한다. 타지에서의 결혼식이나 장례식에도 참석 못한다.
툰드라지역이나 사막과 달리 우리나라에는 이제 그런 곳은 없다고 다들 생각하실 것이다. 그런데 있다. 그것도 여러 곳이다. 바로 내가 살고 있는 거문도를 포함해 멀리 떨어져 있는 섬들이다.
우리 섬에는 하루에 두 번 여객선이 들어온다. 이 배가 오지 않으면 조금 전 말한 대로 완벽한 고립이 된다. 일 보러 나갈 수도 없고 육지 나간 사람도 돌아오지 못한다. 산골 오지라면 걷기라도 할 텐데 말이다. 이 불편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정말 모른다. 발이 묶인 관광객들도 발을 동동 구르다가 어쩔 수 없이 하루나 이틀 여관방에서 뒹굴어야 한다. 그리고 그 불편을 평생 기억하면서 산다. 그러니 살고 있는 주민들은 오죽 하겠는가.
풍랑주의보 때문에 배가 오지 않은 것은 당연하게 여긴다. 자연현상이니까. 문제는 풍랑주의보까지 아닌데도 배가 오지 않는 경우이다. 이런 상황이 종종 생긴다. 세월호 참사와 그리고 최근 추자도의 돌고래호 전복 사고 이후에 더욱 그렇다.
여객선 운항을 통제하는 곳은 해운조합의 운항관리실이다. 이곳, 귀에 익으실 것이다. 세월호 사고 이후 해피아 운운되며 부실과 무능의 조직으로 유명해졌으니까. 그런데 지금도 이곳이 운항관리의 전권을 쥐고 있다. 이들은 여차하면 안전을 이유로 여객선을 통제한다. 우리 주민이 볼 때에는 안전보다는 혹시 자신들에게 불이익이 생길까봐 몸 사리는 것이다. 신뢰가 전혀 안 가는 것이다.
조금 따져보자. 그들이 통제의 근거로 삼는 것은 기상청에서 발표하는 파도 높이이다. 보통의 경우 유의파고 3m면 풍랑주의보이다. 유의파고란 특정 시간 주기 내에 생기는 파고 중 가장 높은 3분의 1에 해당하는 것들의 평균 높이를 말한다. 최대파고가 아닌 것이다. 여기까지는 상식적이다.
파도 높이를 재는 장비는 해상부이이다. 거문도와 가장 가까운 기상청 해상부이는 동남쪽 14마일 떨어져있는 곳이다. 망망대해 쪽으로 평소에도 파도가 높은 곳이다. 정작 여객선은 그곳과 아무 상관없는 북쪽항로로 다닌다.
문제는 또 있다. 평균치인 유의파고가 아니라 최대파고가 2.5m이면 여객선 운항을 통제한다. 한 시간 동안 단 한번만 2.5m를 기록해도 통제 대상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우습게도 커다란 배 한 척이 근처를 지나가면서 파도를 만들면 단번에 2.5m를 넘어버린다. 해운법에 의해 선사에서 운항관리규정을 작성하고 해수부에서 심사와 승인한 것을 근거로 하는 것인데 이때 최대파고가 들어간 것이다.
보편타당하게 정리하면 여객선 항로에 해상관측부이가 있어야 하고 파도 기준 또한 평균치인 유의파고에 맞추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주민들도 수긍한다.
이 문제로 최근 이곳 거문도에서 기상청과 항만청, 운항관리실 관계자들이 간담회를 갖기는 했다. 행상관측부이 위치를 바꿔달라는 요구를 기상청은 거부했다. 항만청이나 해운조합에서는 새로운 부이를 띄울 의지가 없었다. 최대파고를 유의파고로 바꾸는 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우리 섬 주민은 지금도 여차하면 통제되는 여객선 때문에 가슴 졸이며 살고 있다. 듣기로, 제주도에서도 이 문제가 심각했단다. 기상청과 운항관리실이 서로 네 탓만 해대는 통에 결국 지자체에서 나서서 만들었다고 한다. 거문도는 여수시 소속이다.
한창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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