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월 넘게 후임자 인선이 이뤄지지 않은 채 뒷말만 무성했던 한국금융연수원장 자리는 결국 금융감독원 부원장 출신인 조영제씨에게 돌아갈 모양입니다. 이장영 현 원장의 임기 만료일(4월25일) 무렵부터 내정설이 파다했던 장본인입니다. 4일 금융계에 따르면 조씨는 지난 2일 공직자윤리위원회에서 퇴직공직자 취업심사를 받았고 오는 12일 원장 취임을 앞두고 있다고 합니다.
조영제 금융연수원장 내정설이 처음 돌 때만 해도 금융권은 새삼스러울 거 없다는 반응이었습니다. 금융연수원은 국내 20개 은행의 출자로 설립된 민간기구이지만, 원장 직은 이장영 원장을 포함해 금감원 퇴직 인사가 도맡아왔으니까요. 그러나 지난 4월9일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자살로 촉발된 이른바 ‘성완종 게이트’로 원장 인선 절차는 기약없이 미뤄졌습니다. 재작년 700억원 규모의 경남기업 부당대출 과정에 당시 금감원 부원장보이던 조씨가 은행장을 직접 불러 대출을 지시했다는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입니다.
조씨는 검찰 조사 끝에 6월 불기소처분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금융연수원 사원기관들은 원장 인선을 위한 사원총회 개최를 마냥 미뤘습니다. 내정자의 잠행 또한 길어졌지요. 노조가 조씨를 “부당한 관치금융을 휘둘러온 부도덕 인사”로 규정하며 원장 선임에 반대하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납득하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이미 임기가 끝난 원장이 규정상 어쩔 수 없이 업무를 수행하는 상황에서 조직 2인자인 신응호 부원장(역시 금감원 출신입니다)마저 민간보험사 감사로 자리를 옮기면서 리더십 공백은 한층 심해졌습니다.
기약 없이 이어지던 금융연수원장 공백 사태가 돌연 수습 단계로 들어서고 보니 시점이 수상쩍습니다. 취임일이 금융당국을 상대로 노조가 제기하는 ‘부적격 인사’ 인선 논란을 따져 물을 수 있는 국정감사 일정(8일 종료) 뒤로 잡혀져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달 15일 국정감사 때 금융당국 수장들은 “나와는 무관한 일”(임종룡 금융위원장), “사원총회에서 정해질 일”(진웅섭 금감원장)이라며 의원들의 질문을 피해갔죠. 금융권 안팎에서 조씨와 금융당국이 국감의 예봉을 피할 요량으로 취업심사 및 취임 일정을 맞췄다는 뒷공론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노조에 따르면 사원기관들도 국제통화기금(IMF) 총회(10월5~11일) 참석을 명분 삼아 원장 선임 건을 서면결의로 의결하겠다고 하니 상당히 공들인 ‘금융연수원장 만들기 시나리오‘라고 할 만합니다.
이훈성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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