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호형기자 leemario@sporbiz.co.kr
정돈된 콧수염, 타이트한 블랙 팬츠, 모노톤의 분할패턴 카디건, 발목을 드러낸 슬립온 슈즈까지. 흡사 훈남 대학생의 패션을 보는 듯 했다. 데뷔 20년 차의 송강호의 차림새였다. 모던하게 어울리는(물론 스타일리스트의 도움을 받았지만) 송강호에게 '뭔들 안 어울릴까' 싶었다. 송강호는 서른 번째 영화 '사도'에서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인 조선의 21대 왕 영조를 연기했다. '사도'는 송강호와 타이틀롤 사도세자의 유아인의 미친 연기력을 바탕으로 개봉 보름째 500만 관객 돌파를 앞뒀다.
-'관상'에 이어 두 번째 사극이다.
"'관상'은 계유정난이라는 사실에 허구적인 접근을 한 퓨전사극이었다. '사도'는 임오화변의 비극을 정공법으로 다뤘다. 정통사극은 처음이나 마찬가지였다. 사극은 하고 싶었는데 기회가 잘 없었다."
-사도세자와 영조는 소재의 참신성이 떨어진다.
"영화적인 장치를 꾸미지 않고 그대로 솔직하고 정직하게 진행한 팩트의 전개가 인상적이었다. 이런 점이 관객들에게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올 듯 싶다. 차기작 '밀정'도 소재 면에서 '암살'과 유사한 같은 시대 의혈단의 얘기다. 하지만 다가가는 지점이 새롭고 시선의 각도가 다르다."
-'변호인' 이후 2년 만의 컴백이다.
"'사도'를 촬영하고 어찌하다 보니 2년이 흘렀다. 20년 활동의 평균을 내보니 1년에 한 편정도 하는 편이다. 여러 작품을 두루 잘하는 배우가 있는가 하면 나처럼 다작이 어려운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왕 역할을 해본 느낌은 어땠나.
"왕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다는 생각이다. 크게 달라질 것 없는데 말이지. 용포 입고 수염 붙이고 근엄한 말투의 왕의 캐릭터에 갑갑하던 차에 '사도'의 시나리오를 봤다."
▲ 이호형기자 leemario@sporbiz.co.kr
-영조를 어떻게 해석했나.
"우리가 모르는 군주를 창조하지 않았다. 사료에 나온 영조의 모습에 충분히 인간적인 면을 오롯하게 담으려 했다. 영화에서 영조는 가장 외로운 인물이었다. 이런 점은 연기하는 배우와 일맥상통하는 느낌도 들었다."
-후반부 뒤주에 가둔 사도와의 대화에서 뭉개진 듯한 대사가 인상적이다.
"일부런 그런 것은 아니다. 그 순간은 감정에 충실해 연기했다. 노회한 왕의 무너지는 심정이 또렷하게 들리면 이상할 것 같았다. 전달이 안 되는게 더 리얼하지 않았나."
-몇몇 장면에서는 유머를 담당하기도 했다.
"소소한 웃음들이 나왔다. 귀를 씻거나 문지방을 넘는 모습은 실제 역사에 쓰인 대로 연기했다. 그런데 '넌 존재 자체가 역모야'라는 대사에서 웃음이 나올 줄은 몰랐다."
-영조의 40년 인생을 연기했다.
"주무대는 70대였다. 지금으로 치면 100세다. 구사일생으로 왕이 된 영조는 속이 곪은 고통의 인생을 산 사람이었다. 영조의 삭막한 정서를 표현하기 위해 외모는 물론 걸음걸이, 말투, 손동작, 목소리까지 나름대로 다 바꿨다."
-영화보다 많이 날씬해 보인다.
"옛날에는 왕의 권위를 상징하려 몸집을 부풀리기 위해 옷을 많이 껴입었다. 사도를 더운 7월에 찍다 보니 옷을 껴입을 수 없어 약간 부푼 망을 착용했다. 가짜 '갑바'를 만들었다."
▲ 이호형기자 leemario@sporbiz.co.kr
-이준익 감독과 첫 작품이다.
"그동안 얘기를 참 많이 들었는데 20년 만에 만났다. 충무로에서 인격적으로 존경받는 분이라고 얘기를 많이 들었다. 항상 배우와 스태프들을 칭찬하는 모습이 대단하다."
-유아인과의 호흡은 어땠나.
"배우가 광인을 연기할 때는 테크닉적인 유혹을 받는다. 그런데 유아인은 그 유혹을 경계하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감정 그대로 내던지는 느낌이었다. 저 나이대에 저런 연기를 할 수 있는데 놀랍고 대견했다."
-송강호는 실제 어떤 아빠인가(아들 송준평은 축구선수다)
"자식과 소통의 부재가 영조와 공통점이다. 아들과 대화를 잘 안한다(웃음). 다만 자식에게 어떤 인생을 살길 바라는 압박은 없다."
-올해 남남케미의 영화가 많다.
"여배우들이 섭섭해할 것 같다. 유아인과 호흡도 좋았지만 함께 나온 김해숙 전혜진 문근영 등 여배우들과도 좋았다. 그래서 김혜수와 김고은의 '차이나타운'이 반가웠다. 이 말 꼭 써달라(웃음)."
이현아 기자 lalala@sporbiz.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