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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은 시간포획장치… 페북서만 한국인 시간 月 1만5000년 빨아들여

입력
2015.10.04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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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만한 세상 만들기엔 인색하면서 말춤이나 광고 보는데 순순히 투항

수천편의 영화·수만곡의 노래 실제 경험하려면 경제력이 필수

검색→다운로드→저장→망각에 갇혀

가난한 사람들 꿈에서 깨어나 허황된 미래상 믿지 않는 힘 길러야

사유는 느리고 느린 건 나쁜 시대

감성적·문화적 리듬이 감당 못해 공황장애·우울증, 감기만큼 만연

결국 어떤 노력도 공감도 필요 없는 인터넷의 포르노화만 가속도 붙어

8월말 서울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열렸던 ‘인터넷 블랙마켓’에 전시된 터무니상조회의 작품 ‘미디어 아귀와 천사들’.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을 인쇄하여 옷을 만들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미디어에 둘러싸여 비만이 된 인간을 표현했다. ⓒ인터넷 야미이치 서울 & 유상준
8월말 서울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열렸던 ‘인터넷 블랙마켓’에 전시된 터무니상조회의 작품 ‘미디어 아귀와 천사들’.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을 인쇄하여 옷을 만들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미디어에 둘러싸여 비만이 된 인간을 표현했다. ⓒ인터넷 야미이치 서울 & 유상준

시간의 생태계에서 인터넷은 인간의 ‘가동시간(uptime)’을 빨아들인다. 페이스북과 유튜브만 하더라도 인류사에 전무후무한 시간포획장치로 군림하고 있다. 페이스북의 전 세계 사용자 수는 2015년 14억 4,000만 명을 돌파했고, 한국만 해도 월 실사용자의 수가 1,500만 명에 이른다. 월 평균 체류 시간은 9시간이라고 한다. 매월 소비되는 누적 시간의 규모는 한국 사용자만으로 1만 5,000년에 달한다.

가수 싸이(박재상ㆍ38)의 4분 13초짜리 노래 ‘강남스타일’은 유튜브에서만 24억 번 조회됐다. 누적 시간은 1만 9,000년을 넘어섰다. 누군가 홀로 이 노래만 들으며 시간을 보내야 한다면, 마지막 빙하기를 지나 4대 문명의 태동과 예수와 부처, 마르크스, 이명박과 박근혜의 탄생을 지나 지금에서야 겨우 끝났을 지구사적 과업이 되었을 것이다. 숟가락 하나로 산을 강으로 바꿀 수 있는 시간이다. 사람들은 세상을 좀 더 살 만한 곳으로 바꾸는 일에는 좀처럼 시간을 할애하지 않지만, 말춤이나 광고를 쳐다보는 일에는 순순히 투항한다.

인터넷이 우리 삶을 촘촘히 에워싸면서 사람들의 소비 습관도 변했다. 오늘날의 데이터 소비는 실제로 몸을 움직여 듣고 보고 경험하는 질적인 시간의 향유보다 검색과 다운로드를 되풀이하는 일에 치우쳐 있다. 새로운 데이터가 쉼 없이 유입되는 속도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작품을 느긋하게 감상하기보다는 파일을 선택하고 저장하는 속도를 더 즐기게 된다. 예를 들어 애플이 서비스하는 아이클라우드(iCloud)의 기본 저장 용량은 5기가바이트(GB)다. 5분짜리 MP3 파일만으로 채운다면 1,000곡가량을 업로드할 수 있다. 유료서비스를 이용하면 50GB까지 용량을 확장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외부 기억장치마다 온갖 파일이 가득 채워져 있다면 한 번쯤 계산해보기 바란다. MP3 음원 1,000곡을 경청하려면 80시간 이상이 필요하다. 그 데이터를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 우리에게 있긴 한 걸까?

초고속 통신 상품의 광고 중에는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속도”라는 카피가 있었다. 더 빨라진 통신망에서 1초 만에 전자책 8권, 이미지 17장, 0.3초 만에 5MB 분량의 MP3 파일을 내려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과연 다운로드 속도만큼 우리의 의식도 가속될 수 있을까? 0.3초가 음악을 듣기에 충분한 시간일까?

언젠가 체험할 수도 있는 가능성의 차원에 데이터를 저장하기만 한다면, 그에 할당될 시간을 0으로 압축할 수 있다. 이대로라면 어떤 가능성을 모아뒀는지 잊어버리기도 쉽다. 오늘날의 데이터 소비가 체험이 아닌 망각에 비례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삶의 강렬함이 희미해진 기억은 뇌의 신경망에서든 외부 기억 장치를 통해서든 인간 신체의 가동 시간 중에 활성화될 가능성이 낮다. 검색 → 다운로드 → 저장 → 망각의 고리에 묶인 우리는 디지털 네트워크의 경첩에 불과하다. 수천 편의 영화와 수만 곡의 노래를 실제로 경험하기 위해선 그만한 경제력이 필요하다. 시간은 자본이다. 작품 감상에 필요한 시간을 밥벌이의 일상으로부터 마련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에서 산다는 것은 가계부채 1,200조 원, 하우스푸어 250만 가구, 장기연체자 350만 명, 10명 중에 6명이 빚을 진 사회 속에서 버티는 일이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질적 체험을 누릴 수 있는 돈과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신기루나 마찬가지인 가능성 그 자체는 삶에 결핍된 거의 모든 것의 대체재로 남용될 수 있다. 그러니 단언컨대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꿈속에 꿈을 겹겹이 쌓아올리는 달콤한 상상력이 아니라, 꿈에서 단호하게 깨어나는 힘, 즉 파상력(破像力)이 절실히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파상력은 허황한 미래의 표상을 믿지 않는 힘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진짜 미래는 어느 사이트에서도 다운로드할 수 없다. 지금 내가 한 행동으로부터 다음 순간이 열린다. 누구라도 예측하기 쉬운 뻔한 미래는 검색 → 다운로드 → 저장 → 망각의 고리에 묶여 있는 이의 내일이다. 그렇다고 자신의 의지와 근기가 부족해서 이 지경에 이르렀다고 자책할 필요는 없다. 자기 책임을 들먹일 만큼 문제는 간단치 않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가장 빠른 속도를 체험했다고 착각하는 이 시대야말로 깨어나야 할 가장 나쁜 꿈이다. 이 꿈의 거푸집이자 삶의 실제적인 시간을 0으로 압축하는 전방위적 사회 구조를 바꿔야 한다.

그런 일이 정말로 가능하려면 ‘접속’을 넘어 ‘결속’에 이를 수 있는 시간의 형식을 지키고 더욱 풍부하게 가꿔나가야 한다. 이탈리아의 미디어 이론가이자 활동가인 프랑코 베라르디 비포에 따르면,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인해 지배적인 상호작용의 양식이 ‘결속’에서 ‘접속’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비포는 ‘프레카리아트를 위한 랩소디’에서 “공간이 아닌 공간, 시간이 아닌 시간 속에서 존재하는 비특이화된 신체들의 통합”을 ‘접속’이라고 정의했다. ‘접속’에 온갖 긍정적인 의미를 몰아넣었던 디지털리스트들의 상투적인 접근과는 다른 방식이다. 개념은 비판적 상대화를 통해 새로운 의미와 맥락을 충전 받게 마련이다. ‘접속’과 ‘결속’을 묶어 시간의 생태계를 사유하는 일도 예외일 수 없다.

인터넷 공간에서 사람들의 접속은 0과 1로 구성된 전자적 펄스로 이뤄진다. 이 시공간에선 비트로 바꿀 수 없는 것들은 호환 불가능하다. 코드들의 통사 구조 혹은 운영 체제에 근거한 예측 가능한 작업을 수행할 수 없다면 접속은 성립될 수조차 없다. 나를 나일 수 있게 하고, 너를 너일 수 있게 하는 온갖 특이성도 접속의 거름망을 통과하지 못하면 신호를 방해하는 소음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반대로 ‘결속’은 “신체들 사이의 특이하고 반복 가능하지 않는 의사소통”이다. 결속을 위해 우리는 상대가 보내는 신호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똑같은 메시지라도 신호의 맥락, 분위기, 말하지 않은 것까지 추적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질적 시간이 확보되어야 하지만, 디지털 신자유주의에 휩쓸린 오늘날의 시간 생태계에선 쉽지 않은 일이다. 막대한 정보를 쏟아내고 있는 인터넷은 송신 속도를 끊임없이 가속하고 있다. 이를 수신할 인간 의식의 프로세싱도 가속되고 표준화되고 있다. 사람들은 메시지의 모호함과 불투명성을 몇 번이고 탐색해 의미를 찾는 대신에, 접속에 최적화된 정보를 수신해 빠른 인지반응을 끌어내는 편을 훨씬 선호하게 되었다. 그 편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미디어 문화이론가 레프 마노비치가 이끄는 Calit2 연구소가 2010년 10월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개최한 전시회 ‘Mapping Time’의 한 장면. 인터넷의 시간 생태계를 시각화한 작품이다. ⓒgallery.calit2.net
미디어 문화이론가 레프 마노비치가 이끄는 Calit2 연구소가 2010년 10월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개최한 전시회 ‘Mapping Time’의 한 장면. 인터넷의 시간 생태계를 시각화한 작품이다. ⓒgallery.calit2.net

사유는 느리고, 느린 것은 살아남을 수 없는 야만의 시대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 빨라져야 하고, 그 때문에 병들고 있다. 불안정한 감정 기복, 공황, 우울증이 감기만큼이나 만연한 정신질환이 된 원인은 자신에게 닥쳐오는 물리적 감정적 문화적 리듬을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경제 구조와 정보환경에선 누구라도 정신질환의 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의미화의 과정을 압축하고 단축하면 흥분만 남게 된다. 신경 시냅스에서 터지는 전기 화학적 반응은 정보 환경의 가속화를 가까스로 쫓을 수 있다. 지난 이십여 년 동안 인터넷 전체가 포르노화되고 있는 이유도 가속화의 결과다. 생각에 몰두하지 않더라도 신경계에서 자동적으로 자극을 끌어낼 수 있는 콘텐츠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어떤 노력도 공감도 필요 없는 볼거리다. 오늘날의 포르노 문화는 여성을 대상화한다거나, 성이 매매되는 타락을 비난하는 수준에선 실체를 온전히 파악하기 어렵다. 음식도 포르노가 될 수 있고, 불안정한 노동의 회로도 마찬가지며, 텔레비전 뉴스와 반려 동물, 정치인의 연설문도 자극적인 포르노가 될 수 있다. 오늘날의 포르노는 타인의 기쁨과 아픔을 나의 것으로 느낄 수 있는 감성과 감수성의 무능력을 의미하는 것이면서, 그로 인해 결핍되거나 말소될 수밖에 없는 언어의 빈자리가 외설적으로 드러난 현상이다. 사람들로부터 결속의 진중한 시간을 쉴 새 없이 빼앗는 폭력적인 정보환경도 포르노 뒤에 숨어 있다. 하지만 결속에서 접속으로 밀려나는 가난뱅이들의 세계가 지겹고 괴로워서 사람들은 외려 악순환을 택한다. 미디어 환경 전체에 넘쳐흐르는 전기적 흥분이 그들을 위로하고 결국 병들게 할 것이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접속에서 결속으로 문화적 전환이 일어나려면 그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할 경제적 자원이 필요하다. 인간적 존엄과 자율적 시간의 생태계를 복원할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기본소득은 언제쯤 실현될 수 있을지 까마득하기만 한데, 부채 인구는 갈수록 늘고 있다. 이대로 뭘 어쩌란 말인가? 그 질문에 되묻고 싶다. 이대로 지금 우리의 삶이 다음 세대로 이어져야 할까? 더 나쁜 미래를 막는 일에 뭐든 해야 하지 않을까. 바로 지금 내가 한 그 행동으로부터 다음 순간이 열린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하나씩 할 수 있는 싸움을 해나가는 수밖에 없다. 빼앗긴 미래를 압축된 0의 시간에서 구해내자.

임태훈 인문학협동조합 미디어기획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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