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프로토콜의 탄생에 기여해 ‘인터넷의 아버지’로 꼽히는 빈트 서프 구글 부사장은 2007년 영국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우리는 곧 TV의 대부분을 인터넷으로 볼 것이고 이 새로운 양방향 서비스 때문에 전통적인 TV는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8년이 지난 지금 그의 예측대로 많은 사람들은 집에서 정해진 시간에 TV를 보지 않는다. 자신이 원하는 콘텐츠를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휴대폰이나 태블릿 등 다양한 기기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바보상자라던 옛날 TV는 가고 인터넷으로 무장한 똑똑한 TV가 등장했다. 게다가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인 오버 더 톱(OTT)의 대표 주자 ‘넷플릭스’가 내년 초 한국에 들어올 계획이다. 그런데 적용되는 법은 어떤가. 텔레비전은 방송법으로, 인터넷(IP)TV는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사업법으로, 휴대폰은 전기통신사업법으로 선을 그어 구분하고 있다. 방송과 통신의 각 서비스별로 법을 달리 하다 보니 똑똑한 TV에 적용하기 어렵다. 법도 하나로 통합해 똑똑해져야 할 때이다.
인터넷이 기기를 하나로 연결하듯 개별법도 서로를 연결할 수 있는 구심점이 필요하다. 바로 ‘이용자’이다.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사회는 오로지 이용자를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 방향은 ‘더 빠르게, 더 다양하게, 더 편리하게’이다. 기업들도 이 생태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용자 요구에 촉각을 곤두세워 즉각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법과 제도가 ‘사업자 중심’이었다면, 앞으로 ‘이용자 중심’으로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마침 지난 7월 권은희 의원이 ‘방송통신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을 대표 발의한 것은 이용자 중심의 법체계를 구축하려 한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 이 법의 취지는 개별법에 산재되어 있던 이용자 보호 제도를 단일법으로 통합해 신속한 피해구제를 위한 기반을 마련하고 이용자 역량 강화를 통해 피해를 예방하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개별법에 산재된 이용자 이익 침해 행위 규정을 단일화하고 융합서비스로 인한 이용자 이익 침해 행위를 새롭게 추가했다. 또 방송에 분쟁 조정, 통신에 재정으로 이원화돼 있던 분쟁해결제도를 통합할 수 있도록 개선했다. 특히 다수 이용자에게 같은 유형의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 집단분쟁조정을, 긴급을 요하는 경우 직권조정을 할 수 있다. 지금과 같이 방송과 통신 각 영역별로 규제를 차별화하는 것은 이미 경계가 사라져 ‘단일 이용자’가 다중 서비스를 넘나들며 이용하는 상황에 맞지 않다. 이러한 측면을 고려해 바뀐 정보통신기술(ICT) 환경에 맞게 기존의 시청자, 통신가입자 등을 ‘이용자’로 통합해 일원화된 보호를 꾀한 점을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이용자 보호라는 생각은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이 선언한 소비자의 권리에서 기원한다고 볼 수 있다. 1962년 3월 케네디는 ‘소비자 이익의 보호에 관한 특별교서’에서 최초로 소비자 권리를 선언했고 여기에 ‘안전할 권리, 알 권리, 선택할 권리, 의견을 반영시킬 권리’를 담았다. 이는 지난 반세기 동안 여러 나라에서 소비자 정책 수립의 근간이 되어 소비자 이익을 크게 증진시켰다.
위 법안에는 이 소비자 권리처럼 ‘정보를 제공 받을 권리, 선택할 권리, 의견을 개진할 권리, 보상 받을 권리, 교육 받을 권리’가 규정돼 있다. 이는 이용자를 정부 정책에 따른 반사적 이익의 객체가 아니라, 권리의 적극적 주체로 인식한 것이다. 미래 사회를 만들어가고 발전시키는 것은 적극적인 이용자이다. 그 과정에서 이용자의 권익은 끊임없이 강화돼야 한다. 이용자 보호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 방송통신 이용자보호법 제정은 미래사회를 향해 가는 주춧돌의 하나가 될 것이다.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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