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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車 한 대 값 벌다 규제·일본계 진출에 주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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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車 한 대 값 벌다 규제·일본계 진출에 주춤

입력
2015.10.0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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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없이 돈을 만져봤다. 귀가할 때쯤이면 주머니마다 돈이 한 다발씩 꽂혀 있어 매일 차 한 대씩 살 수 있을 정도였다.”

1970년대부터 명동 사채시장에 발을 들였던 한 원로 사채업자의 회고다. 이자율 상한을 정한 2002년 대부업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사채시장은 ‘땅 짚고 헤엄치던’황금기였다고 한다. 이자율 제한도 없었고 고도성장으로 기업의 자금수요가 꾸준히 이어져 큰 돈만 떼이지 않으면 한몫 챙기기가 어렵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채시장은 경제성장과 궤를 같이 했다. 정부 주도로 경제개발이 이뤄지던 1970~1990년대에는 투자에 필요한 돈이 늘 부족해 사채시장은 기업의 자금줄 역할을 했다. 현대 정주영 회장, 삼성 이병철 회장마저 사채시장 신세를 졌다는 말도 있다.

담보가 없어 제도권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리지 못한 기업들은 자연스럽게 사채시장 문을 두드렸고 고리(高利)로라도 기꺼이 거액을 조달했다. 중견기업의 재무담당 임원을 맡았던 한 인사는 “그 때는 만들면 팔리던 시절이라 수출이든 내수든 원리금을 상환할 정도의 돈을 어렵지 않게 회수했다. 사채로 부동산도 투자해 부수입이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거물 사채업자들은 음지에서 나름 떵떵거리며 기업의 운명을 좌지우지 했을 정도였다.

2000년대 이후로는 벤처 붐을 타고 주식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사채업자들은 주식담보 대출로도 돈을 쓸어 담았다.

하지만 ‘장영자 사기사건’이나 각종 ‘벤처 거품’ 등으로 불법과 탈세로 얼룩진 사채시장의 어두운 면이 속속 드러나자 대부업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쌓여갔다. 터무니없이 높은 이자에 비자금 저수지라는 오명까지 더해지자 당국의 압박도 계속 높아졌다. 자연스럽게 이자율 상한은 내려갔고 국세청과 검찰은 수시로 세무조사와 탈세수사를 반복하며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벌이는 예전만 못해졌고 단속강화에 따른 ‘영업 리스크’가 커졌다.

여기에 시설자금이나 운영자금 등 정부에서 뒷받침하는 각종 기업 지원금이 많아지고, 저축은행이나 캐피털업체, 일본계 대부업체들이 공격적으로 영업을 하면서 음지에서 성행하던 사금융시장은 자연스럽게 위축됐다. 대부업체 수가 최근 5년간 2,000여곳이나 감소한 것만 봐도 그렇다. 20년 이상 명동과 신사동에서 일해온 업계 관계자는 “외환위기나 대부업법 시행 이전과 비교하면 사채시장 규모가 절반 이하로 축소됐다. 피부로 느낄 정도”라고 밝혔다.

그래도 사채시장은 당분간 건재할 것이란 의견이 우세하다. 세무조사 경험이 풍부한 전직 국세청 직원은 “제도권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는 금융 수요자가 여전히 많기 때문에 대부업자들은 계속 돈을 벌 것”이라고 진단했다.

강철원기자 str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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