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박 대통령의 남자'로 호형호제
2010년 전후 비박·친박의 길로
안심번호공천 갈등서 쌓인 오해·앙금
총선 앞 외형상 화해 제스쳐 불구
대권 가도 본격화땐 대립각 불가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의 얄궂은 관계가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둘러싼 당청 충돌을 계기로 다시 한 번 주목 받고 있다. 이번 파문의 시작부터 결말에 이르기까지 호형호제하는 두 사람이 나란히 등장했기 때문이다. 현 수석은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움직이는 비서로서 김 대표와 각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
‘부산 사나이’로 통하는 두 사람은 한때 모두 ‘박근혜 대통령의 남자’였다. 김 대표가 2010년 전후로 박 대통령과 멀어지면서 두 사람은 서서히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현 수석은 요즘도 김 대표를 ‘형님’, ‘형’이라 부를 정도로 허물 없는 사이이긴 하다. 청와대와 김 대표가 최근 안심번호 국민공천제 도입을 놓고 맞붙었을 때 당청 간 가교 역할을 한 것도 현 수석이었다. 그러나 이번 갈등 과정에서 두 사람 사이엔 불가피하게 오해와 불통이 쌓였고, 상당한 감정의 앙금이 남았다고 한다.
김 대표는 1일 저녁 6시 30분쯤 현 수석에 전화를 걸었다. 청와대에 ‘휴전하자’는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서였다. 김 대표는 “당내 기구를 만들어 총선 공천제도를 원점에서 논의하기로 한 만큼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다시 거론하지 않겠다. 또 노동개혁을 비롯한 청와대의 국정과제 추진에 힘을 모으겠다”고 손을 내밀었다고 한다. 1일 오전 기자들을 만나 ‘지난 달 28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안심번호 국민공천제 도입에 합의하기 전에 청와대와 미리 협의했다’는 취지로 말해 청와대를 잔뜩 자극했을 때와는 180도 태도를 바꾼 것이었다.
당시 김 대표의 ‘청와대 사전 협의 주장’은 당청 간 진실 공방으로 번져 있었다. 청와대 관계자가 1일 오후 “김 대표가 지난달 26일 만난 것은 현 수석이다. 그러나 현 수석은 안심번호 국민공천제에 반대 입장을 곧바로 밝혔고 박 대통령에 보고도 하지 않았다”고 공개하면서다. 김 대표와 현 수석이 ‘26일의 진실’을 놓고 공개적으로 대립하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김 대표는 현 수석에 전화를 걸기 직전 기자들을 만나 “반대라는 표현은 은 기억에 없지만 현 수석이 우려한 것은 사실이며, 그것이 우려라고 하면 수용하겠다”고 물러서 진실 공방을 이어가기보다는 갈등 봉합에 나섰다. 김 대표는 기자들에게 한 얘기를 현 수석에게 다시 한 번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대표의 측근은 2일 “여당은 물론이고 청와대를 위해서도 파국으로 가지 않도록 일단 통 큰 모습을 보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엔 “김 대표가 청와대와 물밑 접촉 내용을 의도적으로 언론에 흘린 것은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며 불쾌해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현 수석도 김 대표가 26일 만난 사실을 공개하고 김 대표의 일부 측근들이 이번 사태를 청와대의 공천 지분 싸움으로 몰아간 것에 대해 섭섭함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청 관계 복원에 박근혜정부의 성공과 여당의 총선 승리가 달려 있는 만큼 김 대표와 현 수석은 조만간 화해하는 제스처를 취할 것이다. 그러나 비박계 대선주자인 김 대표는 머지 않아 대권 가도를 위해 박 대통령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칼을 겨눌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비서’이자 박 대통령의 절대적 신임을 받는 현 수석은 그런 김 대표와 부딪힐 것이다. 박 대통령과 김 대표의 관계에 따라 김 대표와 현 수석의 정치적 운명이 완전히 어긋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여권 관계자는 “현 수석이 지난 7월 취임한 이후 당청 관계가 부드러워지고 일이 제대로 돌아가는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현 수석은 어차피 박 대통령의 사람으로, 두 사람의 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복잡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문선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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