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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장막 속의 수천억 주무르는 큰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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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장막 속의 수천억 주무르는 큰손

입력
2015.10.0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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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도 안 보이는 錢主

대대로 현금부자 등 큰손부터

돈세탁 원하는 재벌·기관까지

법인·대리인 내세워 신분 감춰

중소업자는 바짝 벌고 떠

거리에 사채 대출 스티커가 빽빽하게 붙어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거리에 사채 대출 스티커가 빽빽하게 붙어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개인 소액대출보다는 기업이나 사업가를 상대로 제법 큰 돈을 빌려주고 투자하는 돈 놀이마당인 사채시장은 서울 명동과 을지로, 신사동, 테헤란로, 여의도 등지에 형성돼 있지만 그 실체나 내막을 들여다보기는 쉽지 않다. 그만큼 은밀하다. 이들이 당국에 대부업이나 대부중개업 신고를 했지만 간판 없이 사무실을 운영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도 따가운 시선 못지 않게 드러내서 좋을 게 없다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간판을 달아도 ‘캐피털’ ‘인베스트먼트’ ‘상사’ ‘부동산’ ‘컨설팅’ 등을 더 선호한다. 전ㆍ현직 대부업자 7명을 만나 사채시장의 현 주소를 짚어봤다.

사채를 하는 사람

짧게는 하루, 아무리 길어도 3개월 내에 고수익을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단기간에 큰 돈을 만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뛰어든다. 수억 원대 소액으로 사채업에 뛰어든 사람들도 있지만 사채시장을 좌지우지하는 큰 손들은 따로 있다. 이들은 인수합병과 유상증자 등 기업투자부터 부동산, 잔고증명 대출 등 돈 되는 일이면 뭐든지 몰려간다.

명동 사채시장에 20~30년 몸 담았던 인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집안 대대로 돈이 많았던 현금 부자들과 일찌감치 명동에 터를 잡고 자수성가한 사채업자의 영향력이 크다고 한다. 이들은 수천억 원을 주무르며 아들이나 사위에게 사업을 물려줄 정도로 사업에 애착이 크지만 법인이나 대리인을 내세워 철저히 신분을 감춘다. 업계 관계자는 “주식담보대출을 주로 하는 B회장이나 연말 잔고증명으로 돈을 버는 C회장 같은 전국구 큰 손은 검찰 수사 등으로 드러나기 전까진 바깥에서 정체를 파악하기 힘들다”고 전했다.

재벌가의 개인자금이 돈놀이나 자금세탁을 위해 대리인을 끼고 사채시장으로 흘러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이런 돈들은 단기간에 ‘치고 빠지는’ 성격이 강해 투기성이 강한 특징이 있다고 한다.

법적으로 자금운용에 제약이 많은 종교단체나 사학재단 자금이 사채시장 전주(錢主) 역할을 하기도 한다. 올해 초 중견기업 C사가 운용자금을 사채시장을 통해 조달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개신교 계통 종교단체가 자금줄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최근엔 개미들의 자금을 모아서 전문적으로 운용해주는 업자들도 생겼다.

불문율은 전주가 누구든 절대로 밝히지 않는 것이다. 자금출처가 밝혀질 경우 세무조사나 검찰수사로 이어지는 탓에 대개 금전거래 자체를 기록에 남기지 않는다.

일부 사채업자들은 제도권으로 진출하기도 한다. 전직 국세청 관계자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저축은행이나 캐피털 회사 오너 중에 사채업자 출신이 적지 않다”며 “큰 손들은 돈 버는 게 눈에 보이기 때문에 다른 일을 할 수가 없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중소 대부업자들은 보통 5,6년 바짝 벌고 이 바닥을 뜨는 게 목표다. 대부업 3년째인 40대 남성은 “사채시장은 비정하기도 하거니와 태생적으로 어두운 면이 많다. 아버지 직업이 사채업자라고 하면 자식들한테 부담되지 않겠느냐”고 전했다.

고금리에도 끊이지 않는 손님

돈줄 막혀 급전 필요한 사장

잔고증명 위해 문 두드리기도

고수익·고위험 시장 주 고객

사채를 찾는 자

사채시장은 초단기자금의 공급처다. 고리(高利)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자금융통이 일시적으로 막혀 급전이 필요한 회사나 신용이 좋지 않은 사업가들이 자주 찾는다. 회사가 건실해도 담보가 없거나 부적절해 제도권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리기 어려운 회사들도 단골이다.

그러나 큰 돈을 빌리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회사를 상장시키거나 새로운 사업에 진출하고 싶은 회사, 인수합병 계획을 세웠는데 돈이 부족한 회사들도 주식을 담보로 사채시장을 찾는다. 기업 입장에서 주식담보 대출은 간편하다. 시중은행과 거래하면 공시를 해야 하지만 사채시장의 주식담보 대출을 통하면 인수합병 등을 은밀하게 추진할 수 있다. 하지만 고리의 사채업자 돈으로 이익을 남기려다 보니 인수한 상장회사 주가를 인위적으로 띄우거나 회사 돈을 빼돌려 껍데기 회사로 만드는 등 무리한 행위로 종종 사고를 일으키기도 한다.

특히 잔고증명을 위해 사채업체 문을 두드리는 건설업체는 가장 확실한 수입원이다. 건설업관리규정에 따르면 건설업체들은 연말에 재무상태와 거래실적을 보여주기 위한 통장 잔고를 당국에 신고해야 한다. 정부는 부실업체를 솎아내기 위해 건설업체 통장에 60일 동안 일정 금액 이상의 평균잔액이 예치됐는지 확인하고 기준에 미달하는 업체에는 입찰제한이나 영업정지 등 불이익을 준다. 재무상태가 양호하지 못하거나 거래실적이 부진한 업체는 12월 잔고증명에 대비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돈을 빌릴 수밖에 없다. 사채업자들은 이자를 먼저 받고 의뢰인 통장에 돈을 넣어 주는 대신 통장에 질권(일종의 근저당) 설정을 하기 때문에 떼일 염려 없이 수입을 확실하게 챙길 수 있다. 문제는 질권이 통장에 찍혀 나오면 잔고증명 효과가 사라질 수밖에 없어 은행이 개입된다. 을지로에서 만난 40대 여성 대부중개업자는 “통장에 질권 설정 표시가 안 되게 편의를 봐주는 은행이 몇 군데 있다. 거래를 많이 해서 믿음이 생긴 대부업자에게만 눈감아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요지경 같은 사채시장의 일면이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사채업자 7명은 이자를 많이 받는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항변했다. “돈을 떼일 위험이 크고 당국의 조사 가능성도 상존한다. ‘고위험 고수익’ 사업이라고 보면 된다.”

강철원기자 str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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