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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이 우주 어디쯤에 있나

입력
2015.10.02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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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팀 라드퍼드는 ‘내가 있는 장소가 어디인가’라는 하나의 화두로 시작해 문학, 역사, 과학, 지리를 바탕으로 지구와 은하계를 탐험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저자 팀 라드퍼드는 ‘내가 있는 장소가 어디인가’라는 하나의 화두로 시작해 문학, 역사, 과학, 지리를 바탕으로 지구와 은하계를 탐험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우주에서 떨어진 주소록 / 팀 라드퍼드 지음 / 샘터 발행ㆍ400쪽ㆍ1만7,000원
우주에서 떨어진 주소록 / 팀 라드퍼드 지음 / 샘터 발행ㆍ400쪽ㆍ1만7,000원

나는 누구인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직업과 주소를 쓰라면 몰라도 이런 질문에는 거침없이 답하기가 적잖이 곤란하다. 그런데도 인류는 끈질기게 답을 갈구하며, 이 호기심을 원료로 철학 문학 역사학 지리학 천문학 등을 탐구해왔다.

‘우주에서 떨어진 주소록’은 ‘나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이 오래된 화두를 통해 극도로 사소하지만 자못 경이로운 한 개인의 지적 여정을 다룬 책이다. 원저는 2011년에 출간된 ‘The address book’. 저자는 영국 가디언에서 32년간 예술, 문학, 과학분야 편집자로 일한 팀 라드퍼드다.

그는 자신의 집 작은 방에서 출발해 거리, 마을, 지역, 국가, 대륙, 행성, 우주로 시선을 넓혀가며 자신에 눈에 비치는 세상을 풀어낸다. 지리학자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책과 지도를 사랑한 그는 시선을 근경에서 원경으로 이동하는 동안 다소 엉뚱한 질문들을 내놓은 뒤 문학, 지리학, 천문학, 그리고 자신의 개인사를 종횡무진하며 답을 고민한다. 이를 테면 ‘끊임없이 해안이 침식되고 있는데도 내가 알고 있는 내 위치 좌표는 그대로라고 믿어도 좋은가’ ‘나는 정말 이방인이 아닌 이 마을 사람인가’ ‘주소를 뜻하는 단어들의 어원은 무엇일까’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유럽인가’ ‘저 넓은 우주에 우리 이웃이 있을까’ 를 묻는 식이다.

총 11장으로 구성된 책은 1장 ‘번지와 거리’에서 여정을 시작한다. 내가 머무는 이 집의 주인은 대체 누구인가? 재산권이 명시된 문서를 갖고 있긴 하지만 설계나 건축은 물론 이 땅이 자리하는데 어떤 기여도 하지 않은 나인가, 생존적소인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독한 화학약품의 공격을 견뎌 온 빗살수염벌레인가. 다소 뚱딴지 같은 질문에서 시작해 장소와 장소를 사유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는 동안 그는 우리가 한 장소를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방식으로 재구성하고 있을 뿐이 아니냐고 묻는다. “기억 속에 있는 한, 내가 살았던 모든 장소들은 여전히 나와 함께 있다. 그곳들은 모두 내 삶을 형성하고 강렬하게 채색한 수 많은 순간들의 배경이 되어 주었고, 그 장소들의 질감은 불현듯 떠오른 기억들과 오래된 사진들 그리고 뜻밖의 대화들 속에서 새록새록 살아난다.”(41쪽)

2~6장에서는 각각 마을, 주, 지역, 국가, 대륙, 반도를 주제로 영국 해변마을, 영국이라는 국가와 유럽이라는 대륙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문헌과 역사를 짚어나간다. 자신이 살고 있는 영국 헤이스팅스 마을의 풍경, 마을을 떠나는 소설 속 젊은이들에 대한 단상, 영국 서식스주를 이루는 백악질 지층에 대한 지식, 영웅의 이야기들을 쏟아낸 유럽의 인쇄문화 등. 저자는 자못 수다스럽고 주관적으로 관심사를 확대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채워나간다.

8~11장에서는 행성, 태양계, 은하, 우주를 무대로 ‘우리의 가장 이상적인 거주지가 왜 이 행성일 수 밖에 없는가’를 묻고 답한다. 첫 1억년 동안 불지옥과 다름없었던 행성이 물과 생명을 품고 대기의 도움으로 우리에게 보금자리를 제공하는 과정, 태양계와 은하를 구성하는 원리 등을 소개하는 자연과학 지식들로 무장된 대목이다.

“작은 방에서 시작해서 우주에서 끝나는” 책의 관심범위가 어지러울 정도로 방대한데다, 각 장의 독서를 다 마칠 때까지도 저자가 제기한 각 질문에 대한 뾰족한 정답을 한 줄로 요약하긴 어려운 만큼, 성미가 급한 독자라면 싫증이 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시샘이 날 정도의 방대한 호기심, 지식, 유머를 갖춘 저자의 의식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광대하고 아름다운 우주를 여행을 하고 있다거나 여러 분야 필독서를 집약해 읽는 듯한 지적 포만감이 든다.

“우주가 절대적 무로부터 스스로 출현할 수 있었다면, 왜 하필 그 일을 우리 우주만 해야 했을까. 혹시 우리는 다른 누군가의 우주에서 우연히 일어난 사고가 낳은 결과물이 아닐까. ”(384쪽)

집요하게 이어지는 사유의 전이와 확장이 수렴하는 곳은 인간이 광활한 우주의 특정 시간을 잠시 빌려 머물고 떠나는 피조물일지 모른다는 자각이다.

“‘정확히 네가 있는 곳이 어디야.’ 그런 질문에 답을 하면서도 여전히 나는 마치 잠시 머물다 가는 임시 주소를 댄 것 같은 이상야릇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에 휩싸인다. 가장 운이 좋은 우리도 어떤 의미에서는 어딘가에서 정처 없이 길을 떠난 망명자들인지도 모른다. 에덴을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어딘가에는 분명히 안식처가, 천국이, 우리가 머물 곳이 있으리라고 굳게 믿는 피조물인지도.”(396쪽)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앞으론 어쩐지 ‘너 지금 어디야?’ 라는 간단한 질문에 쉬이 입이 떼지 못한 채 눈동자를 굴릴 것 같다. 아니면 팀의 자기소개를 본떠 이런 말을 쏟아낼 지도. “나 지금? 처녀자리 초은하단, 국부 은하군, 은하수은하, 태양계, 지구라는 행성의 북반구를 여행하는 중! 더 자세히? 아시아 동쪽 구석에 자리한 반도 이남, 동경 127도 북위 37.6도 서울이란 도시, 그 틈에서 쉴새 없이 돌아가는 한 신문사 남쪽 창가 책상 모퉁이를 잠시 빌렸어.”

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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