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과학자이자 소설가인 찰스 퍼시 스노우가 1959년 케임브리지대에서 ‘두 문화’라는 제목으로 공개 강연을 연 이래, 인문학과 과학 사이의 대화를 추구하자는 주장은 계속돼 왔다. 원광연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는 한국에서 예술과 과학 사이의 교류를 적극적으로 시도한, 이 분야의 선구자 중 한 명이다. 그는 문화기술이라는 개념을 세계 최초로 제안하고 2005년 카이스트 내 문화기술대학원 설립을 주도했다. 미래ㆍ게임ㆍ로봇ㆍ우주 등 예술과 과학기술이 만나는 네 가지 주제로 ‘과학+예술 10년 후’전을 연 전시기획자기도 하다. ‘그림이 있는 인문학’은 원 교수가 과학자의 관점에서 본 예술세계 분석이자, 두 분야를 잇기 위해 활동하면서 배우고 느낀 것을 기록한 작업노트다.
원 교수가 정리한 과학과 예술의 접점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예술이 과학에 영감을 제공할 수 있다. 아름다움에 대한 주관적인 개념이 객관적 지식체계인 과학에 어떻게 도움이 된다는 것일까? 예로부터 신이 세상을 가장 아름다운 방식으로 창조했다는 가설이 과학적 발견의 모티브가 된 경우가 많았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복잡한 천체 데이터를 가장 단순하게 설명하려다 나왔고, 인간 유전자의 이중나선 구조도 나선 형태가 미적으로 아름다웠기에 거부감 없이 수용됐다.
둘째, 예술을 과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어떤 모양과 색이 아름다워 보이는지 수학과 과학으로 분석해 왔다. 이 분야의 효시인 이탈리아의 건축가 레오네 바티스타 알베르티(1404~1472)는 저서 ‘회화론’에서 기하학적 분석을 토대로 한 ‘선 원근법’을 제안했다. 빛은 직진하고, 인간의 눈은 그 빛을 받아 현실을 보기 때문에, 회화에서도 하나의 소실점을 찍고 거리에 따라 크기를 달리해 그리면 눈에 보이는 것과 비슷하게 그릴 수 있다는 것이다. 선 원근법은 지금도 2차원 매체인 회화에서 3차원 현실을 모사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식이다.
셋째, 과학기술이 예술작품의 새로운 표현수단이 될 수 있다. 이 분야의 선구자는 예술가와 적극적으로 협업한 모나코 출신의 전기공학자 빌리 클뤼버(1927~2004)다. 그는 1967년 미술작가 로버트 라우센버그와 함께 예술가와 과학자를 연결해주는 프로그램 ‘익스페리먼트 인 아트 앤드 테크놀로지(EAT)’를 결성했다. 클뤼버는 앤디 워홀의 1965년작 ‘은빛 구름’을 기술적으로 지원했다. 워홀은 뉴욕 카스텔리화랑 실내에 구름을 띄워보고 싶어했는데 클뤼버는 이를 수소가 적당히 들어 있는 은빛 풍선 여러 개를 띄우는 것으로 실현해냈다.
원 교수는 기술 발전과 함께 새롭게 등장한 현대 미술로 빅 데이터를 시각적으로 재구성하는 데이터 아트, 인체와 기계의 경계를 탐색하는 로봇 아트를 소개한다. 또 3D 프린터와 웨어러블 컴퓨터의 발전이 새로운 형태의 미술을 등장시킬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예술과 과학기술은 생각보다 밀접하게 서로 영향을 미친다. 현대예술을 감상할 때 르네상스맨의 대표격인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랬던 것처럼 두 분야를 동시에 이해해야 하는 이유다.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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