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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국내 첫 영화제가 생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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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국내 첫 영화제가 생긴 이유

입력
2015.10.0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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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 20년을 지켜온 김지석 수석프로그래머.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부산국제영화제 20년을 지켜온 김지석 수석프로그래머.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부산국제영화제가 스무 살 성인이 되기까지는 여러 성장통을 겪어야 했다. 시행착오와 각고의 노력을 거쳐 ‘아시아의 칸’으로 자리잡았다. 김지석 부산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가 최근 펴낸 저서 ‘영화의 바다 속으로’(본북스)에 돌이켜보면 아찔하나 이제는 웃을 수 있는 뒷이야기들이 담겨있다. 김 수석프로그래머는 이용관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 전양준 부집행위원장 등과 부산영화제 창설을 주도했고 20년 동안 부산영화제 상영작을 선정해 온 부산영화제 지킴이다.

이른바 ‘엔니오 모리코네 박대’ 사건이 눈길을 끈다. 2007년 비 내리는 개막식장에서 영화제 관계자가 이탈리아 출신 유명 영화음악 작곡가인 모리코네에게 우산도 받쳐주지 않고 빨리 나가라며 등을 떠밀어 분노한 모리코네가 다음날 부산을 떠났다는 한 언론의 오보에서 비롯된 소동이었다. 관계자가 정중히 우산을 받혀주고 모리코네와 함께 입장하는 사진을 뒤늦게 찾았으나 이미 오보는 진실인 양 퍼졌다.

199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영화제를 찾은 이회창 후보와 얽힌 사연은 널리 알려져 있으나 다시 봐도 흥미롭다. 이 후보가 남포동 행사장을 찾아 관객들에게 인사하려 하자 오석근 영화제 사무국장이 막아 섰다. 이 후보와 같은 신한국당 소속인 문정수 부산시장이 오 사무국장의 눈물 어린 호소를 받아들여 이 후보의 무대 인사는 결국 무산됐다. 정치권 등 외부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운 부산영화제의 전통이 수립되는 순간이었다.

책은 왜 부산이 국내 최초로 국제영화제를 열게 됐는지도 설명하고 있다. 부산에서는 1958년 부산영화평론가협회가 결성됐다. 서울에 근거지를 둔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창립보다 2년 빠른 시기였다. 한국 최초의 영화제작사 조선키네마주식회사가 설립된 곳도 부산이었다. 오래 묵은 영화 문화를 자랑하는 곳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왜 서울이 아닌 부산에서 첫 국제영화제를 만드는지 관계와 재계를 설득하기는 어려웠다. 칸영화제나 베니스영화제 등 세계 주요 영화제들이 바다를 낀 도시에서 열린다는 논리 아닌 논리가 동원됐다.

2011년 부산을 찾은 프랑스의 유명 배우 줄리엣 비노쉬가 김동호 전 집행위원장의 퇴진을 아쉬워하며 파티장에서 ‘막춤’을 춘 이야기, 이란의 대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이 김 수석프로그래머와 쇠고기를 먹다 자신의 나라에선 가격이 더 비싼 삼겹살을 먹게 된 사연 등이 여느 영화 못지않게 재미있다.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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