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진형 한화투자증권 대표에게 지난달 30일 ‘서비스 선택제’ 시행에 반발한 본사 영업직 간부 및 지점장의 항의 방문은 뼈아팠을 듯싶다. 그 자신이 “(임기 내내)하나씩 준비해 시장에 내놓는 것”이라고 자부했던, 기존 증권업계 관행을 뒤엎어온 개혁정책의 화룡점정이 완강한 내부 반발에 부딪친 것이기에. 주 대표 임기가 반년 이상 남아있던 지난달 한화그룹 인사가 일찌감치 차기 대표로 내정되면서 불거진 레임덕 논란까지 겹쳐 그의 입지는 위태로워 보인다. 이날 주 대표에게 전달된 항의 성명에는 이 회사 지점장 53명 전원이 동참했으니 일부 ‘반(反)개혁 세력’의 저항으로 치부할 상황이 아니다. 회사 홈페이지에 게시된 ‘서비스 선택제 10월5일 시행’이라는 약속은 과연 지켜질 수 있을까.
서비스 선택제의 골자는 주식투자 고객에 대한 서비스 및 수수료 체계를 철저히 이원화하겠다는 것이다. 지점 프라이빗뱅커(PB)에게 투자상담을 받고 싶다면 약정금액의 0.2~0.4%를 수수료로 지급하는 ‘컨설팅 계좌’를, 온라인상에서 자기 판단 아래 투자하려면 거래건수 당 책정된 ‘저렴한’ 정액수수료를 내는 ‘다이렉트 계좌’를 선택하면 된다. 언뜻 보기엔 깔끔한 수수료 체제 정비 같지만, 기존 정률수수료 체제를 대체한 다이렉트 계좌의 정액수수료가 과연 ‘저렴한가’를 두고 주 대표와 영업직원들의 의견이 충돌하며 회사는 분란에 빠져들고 있다.
주 대표는 건당 6,950원으로 책정된 정액수수료가 “대다수의 건전한 투자 철학을 가진 고객”(이하 주 대표 발언은 그의 페이스북 인용)에겐 과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역으로 말하면 ‘불건전한’ 투자자, 주 대표 표현대로 “초단타에 몰두하는 소액주문 고객들”에게 이 수수료는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 통상적인 온라인 주식거래 수수료율 0.1%를 적용하면, 1회 거래금액이 695만원 이하인 고객은 이전보다 비싼 수수료를 치러야 한다. 바꿔 말해 거래금액 단위가 크고 거래횟수가 적은 고객일수록 서비스 선택제로 혜택을 본다. 주 대표는 “모든 고객에게 좋지는 않겠지만 우리가 같이 가려는 고객에게는 더 좋다”며 제도 도입의 주목적이 ‘고객 물갈이’에 있다는 점을 숨기지 않았다.
일선 영업직원들은 서비스 선택제가 “고객에게 ‘수수료 폭탄’을 투하하는 꼴”이라며 맞서고 있다. PB가 관리하는 우량고객이라도 상당수가 온라인으로 직접 주식거래를 하는 현실을 도외시했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영업직 대다수가 반대하는 제도 도입을 주 대표가 촉박하게 밀어붙이면서 수수료 개편 사실을 고지 받은 지점 관리 고객이 채 20%가 안된다”며 “고객들이 뒤늦게 온라인 거래 수수료가 오른 것을 알고 항의하면 뒷감당이 안될 것”이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주 대표와 직원 간 대립에는 온라인 주식거래 수수료를 영업사원 실적으로 반영하던 관행을 없애겠다는 대표의 방침도 큰 몫을 하고 있다. 그러나 고객 위탁 자산을 과도하게 굴려 운용수수료를 극대화하는 악습을 타파할 요량으로 주 대표가 성과급 체제를 대대적으로 개편하는 동안에도 집단행동에 나서지 않았던(개인적 퇴사는 많았지만) 영업직원들이 들고 일어난 데에는 내부 직원이나 증권업계를 넘어 고객까지 ‘훈계’ 대상으로 삼은 주 대표의 행보가 빌미가 된 것으로 보인다. ‘투자자 보호’라는 기치 아래 고객을 우군 삼아 내부 개혁에 나섰던 주 대표가, 비록 ‘초단타 소액주문 고객’으로 한정하긴 했지만 고객을 ‘개혁 대상’으로 자리매김하자 직원들이 ‘고객 보호’를 앞세워 반격할 명분이 생긴 셈이다.
‘민심’을 앞세워 ‘내부 기득권’을 해체하려는, 개혁가들의 보편적 전략을 좇아온 주 대표가 결국 패착을 둔 것일까. 하긴 그를 계열 증권사 대표로 영입했던 그룹 측이 등을 돌린 마당이니, 억눌렸던 내부 불만은 어떤 계기로든 분출됐을 것이다. 개혁이 성공하기란 살얼음판을 깨지 않고 장강을 건너는 일과 같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훈성 경제부 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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