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업기사 동생 획기적 양묘법 개발
미술교사 형 3500점 남기고 떠나
호쿠토市 추모회 방한 재조명 포럼
일제강점기에 조선 도자기를 연구하고 한반도 녹화에 앞장서는 등 조선을 아꼈던 일본인 형제를 기리기 위해 일본 지자체와 추모회가 한국을 방문한다.
일본 야마나시(山梨)현 호쿠토(北杜)시 시라쿠라 마사시(白倉政司) 시장 등 호쿠토시와 ‘아사카와(淺川) 형제 추모회’ 관계자 30여명이 2일 방한한다고 1일 이수현 의인 문화재단설립위원회가 밝혔다. 일본인 아사카와 다쿠미(淺川巧·1891~1931)와 그의 형 아사카와 노리타카(淺川伯敎ㆍ1884~1964)의 넋을 기리고 한일 양국 협력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다.
아사카와 형제는 일제강점기 조선으로 와 도자기 공예 연구와 보존, 식목사업에 헌신하며 진심으로 조선과 조선인을 사랑했던 의인으로 평가받는다. 1913년 경성의 남산심상소학교에 미술교사로 부임한 노리타카는 조선 도자기에 심취해 1946년 일본으로 돌아갈 때까지 전국 700여곳을 답사하며 조선 도자기 역사의 맥을 정리했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조선 도자기 귀신’이다. 당대 다른 일본인은 조선 문화재 도굴과 반출에 열을 올렸지만 노리타카는 소장했던 도자기와 공예품 3,500여점을 훗날 국립중앙박물관에 흡수된 국립민족박물관에 모두 기증하고 떠났다.
동생 다쿠미는 형의 권유로 조선으로 건너와 조선총독부 임업기사로 일하며 황무지였던 한반도 녹화 사업에 헌신했다. 그는 당시로는 획기적인 ‘오엽송(잣나무) 노천매장법’이라는 양묘법을 개발했으며, 민둥산밖에 없었던 한반도 녹화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쿠미는 “조선식 장례로 조선에 묻어달라”는 유언에 따라 서울 중랑구 망우리에 묻혔다. 묘는 지난해 일본 호쿠토시의 지원으로 잔디 덮인 조선식 묘로 재단장했다. 지난 4월에는 이수현재단설립위 주최로 이 묘역에서 그의 84주기 추모제가 열리기도 했다.
추모 방한단은 1905년 일제가 을사늑약을 체결한 덕수궁 중명전을 방문하고 인근의 노리타카 집터도 답사한다. 또 서대문형무소와 다쿠미 묘역, 독립기념관 등을 둘러보고 아사카와 형제를 재조명하는 포럼도 개최한다.
김현빈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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