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부유해지고 있는가? 전세계 총생산량으로만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매우 불편한 진실이 숨어있다. 유엔의 보고서에 따르면 1960년부터 2000년까지 소득 상위 20개 국가의 1인당 평균 GDP는 1만1,000달러에서 3만2,000달러 수준으로 세 배 가까이 늘어난 반면, 하위 20개국의 1인당 평균 GDP는 210달러에서 270달러 정도로 거의 변화가 없었다. 이에 따라 유엔은 2000년 새천년개발목표를 수립하고, 엄청난 금액의 공적개발원조를 쏟아부었다.
하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소득불평등은 심화되었고, 빈곤은 심각해졌다. 일각에서는 빈곤인구가 40% 이상 감소했다고 하지만, 감소된 빈곤인구의 90% 이상을 중국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큰 의미가 없다. 다른 지역은 빈곤인구와 비율이 오히려 증가 추세에 있는 경우가 더 많다. 대표적인 예가 사하라 사막의 남쪽지대인 아프리카 사헬 지역이다.
사헬지역은 아랍어로 ‘변두리’라는 의미다. 종교적 관점에서 봤을 때 사헬지역이 이슬람교가 전파된 한계선이었기 때문에 붙은 이름으로 보인다. 유엔의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 보고서에 따르면 사헬지역에서는 식량을 제대로 얻지 못하는 인구가 2,000만명을 넘어서고, 수십 년 사이 기아 위험에 직면한 인구는 40% 넘게 늘어났다. 사헬지역에 각국의 인도적 지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1970년대부터 사막화가 본격 시작되더니 연이은 가뭄으로 인해 농업 인프라가 완전히 붕괴되고, 사회적으로는 심각한 퇴보 현상이 일어났다. 세계 각국도 이런 변화에 주목해 새천년개발목표를 지속가능발전목표로 수정하기에 이른다. 이는 에너지집약적인 기존의 발전 방식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비판을 수용한 결과이자, 경제성장 외에도 사회발전과 환경보호를 더한 통합적이고 균등한 발전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을 의미한다.
이런 변화를 이해하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1970년대 발전 방식이 유효하다고 판단한 것인지, 한국정부가 유엔에서 꺼내놓은 의제는 뜬금없이 ‘새마을운동’이다. 그 공과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더라도 농촌소득 배가 목표를 기초로 한 새마을운동은 빈곤 퇴치와 사회 발전의 방향을 오로지 경제성장에만 두고 속도전을 벌였다. 그 결과 환경오염이나 사회적 불평등 같은 다양한 부작용이 양산됐다.
그런 발전 방식에 반기를 들어 나온 것이 지속가능한발전목표인데, 잘못 짚어도 한참을 잘못 짚었다. 외교부 블로그에도 지속가능한발전목표는 개도국뿐만 아니라 선진국에도 적용되는 보편적 의제라고 기술되어 있다. 기존 발전 방식이 효과가 없다고 해서 다르게 바꾸자고 했더니 오히려 더 옛날로 돌아가자는 식이다.
게다가 작금의 빈곤은 새마을운동에서 강조하는 의식개혁과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 아무리 농촌 기반을 개선한다고 해도 그 이상으로 가혹해진 기후변화가 소득 기반 자체를 붕괴시키는 양상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은행은 지난해 “빈곤의 종말은 기후변화로 인해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고 선언했다. 아무리 많은 지원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다양한 사회적 요인을 배제한 채, 단순히 “잘살아보세”라던 새마을노래와 같은 반강제적 의식개혁이 중심이 된다면 실패는 명약관화한 일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에서 이렇게 갈파했다. “유럽의 소는 하루 평균 2달러의 보조금을 받는다. 이에 반해 개발도상국 국민의 절반 이상은 2달러 미만의 소득에 의존해 살고 있다. 개도국에서 가난하게 살아가는 것보다 차라리 유럽의 소가 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게으르기 때문에 빈곤하다고 생각한다면 너무 큰 오판이다.
이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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