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스포츠.’
투견, 투우, 투계, 사냥 등 사람이 동물과 싸우거나 동물끼리 싸우도록 강요하는 스포츠를 일컫는 단어로 동물보호론자인 헨리 솔트가 100여년 전에 영국 왕실의 오랜 전통인 사슴 사냥을 비판하며 사용했다. 사실 역사의 어느 순간, 어느 장소로 가더라도 동물을 억지로 싸우게 하는 장면을 만날 수 있다. 고고학자에 의하면 동물싸움은 적어도 3,000 년 전에도 있었을 것이라고 하니 인간들의 폭력적 놀이 문화가 징글징글하다.
얼마 전 한 TV 프로그램에서 투견의 실상이 공개되면서 많은 사람이 놀랐지만 이같은 단발성 시선 끌기로 피의 스포츠가 종결될 수 있을까. 동물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영국이 동물보호운동의 역사가 길고 동물보호단체의 영향력이 커서 부러워한다. 하지만 영국에서 동물보호운동이 일찍 시작된 이유는 동물싸움이라는 학대행위가 가장 흔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 1세 때는 곰을 기둥에 묶은 후 6마리의 개를 풀어서 개가 곰을 잔인하게 물어뜯는 모습을 외국 사절에게 오락거리로 접대할 정도였다. 이처럼 동물싸움에는 늘 강력한 팬과 옹호자가 있고 긴 역사가 함께 한다.
동물 싸움에 관한 사건이 발생할 때면 그림책 ‘꽃을 좋아하는 소 페르디난드’을 떠올린다. 페르디난드는 투우의 나라 스페인에서 태어난 황소로 가장 좋아하는 일은 조용히 앉아서 꽃향기를 맡는 것이다. 어느 날 투우에 쓸 거친 황소를 찾던 사람들 눈에 벌에 쏘여서 펄쩍펄쩍 뛰는 페르디난드가 보였고 바로 잡혀서 투우장으로 가게 된다. 하지만 시합 날 페르디난드는 투우를 보러 온 아가씨들의 머리에 꽂힌 꽃에서 나는 향기를 맡으며 투우장 한 가운데에 조용히 앉아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결국 퇴출된 페르디난드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꽃향기를 맡으며 행복하게 산다는 이야기.
스페인의 투우는 전형적인 동물학대인 피의 스포츠이다. 투우하면 얼핏 생각나는 이미지는 빨간 망토를 휘두르는 남자와 황소지만 투우는 평화로운 망토 놀이가 아니다. 투우에는 소 한 마리와 여섯 명의 사람이 필요하다. 첫 번째 사람은 말을 탄 채 소의 목에 창을 내리 꽂아 소가 피를 쏟고 목 근육을 못 가누게 하고, 다음으로 세 명이 등장해서 여섯 개의 작살을 소의 어깨에 꽂아 많은 피를 쏟게 하고, 마지막으로 등장한 사람은 이미 출혈, 상처, 골절, 공포감으로 지친 소의 심장에 검을 찔러 죽인다.
인간이 부추기고 조작하지 않는 한 이유 없이 공격적인 동물은 없다. 그럼에도 투우 이야기를 하면 어른들은 전통이네 뭐네 또 갑론을박이다. 하지만 페르디난드 그림책을 본 아이들에게 투우를 말하면 꽃향기를 좋아하는 소 페르디난드를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동물학대는 일상적으로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아이들에게는 죄책감과 무력감, 공포가 아닌 페르디난드처럼 긍정의 에너지로 생명 이야기를 하고 싶다. 가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동물 수업을 할 때면 편견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면서 저 아이들이 사는 세상은 연민의 발자국이 조금 더 생명과 가까워졌으면 하고 바란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어른을 설득하는 일도 아이를 이해시키는 것만큼 쉬우면 얼마나 좋을까.
김보경 책공장 대표
참고한 책: 꽃을 좋아하는 소 페르디난드·먼로 리프 글·로버트 로손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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