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나라 수출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왔던 반도체 산업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인 불황으로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줄어들면서 시장을 이끄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실적에 빨간불이 켜졌습니다. 여기에 중국 업체들이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넘보면서 ‘반도체 코리아’ 위상도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전기가 통하는 도체와 통하지 않는 부도체의 특성을 동시에 지닌 반도체는 정보기술(IT) 기기에 반드시 필요한 핵심 부품입니다. 반도체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합니다. 각종 자료를 저장하는 메모리 반도체와 전기 신호를 해석해 특정 기능을 수행하는 비메모리 반도체입니다.
이 가운데 메모리 반도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 세계 1, 2위를 다투며 우리나라가 강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메모리 반도체는 D램과 낸드플래시가 대표적입니다. D램은 자료를 임시 저장하는 장치로 전원이 꺼지면 보관된 자료가 사라지지만 자료 처리 속도가 빠릅니다. 반면 낸드플래시는 기기가 꺼져도 자료를 계속 보관하는 대신 자료 처리 속도가 느립니다. 비유하자면 D램은 자료를 펼쳐 놓는 책상이고 낸드플래시는 자료를 저장해두는 책장에 가깝습니다.
비메모리 반도체의 대표 제품은 컴퓨터(PC)의 두뇌 역할을 하는 중앙처리장치(CPU)와 스마트폰 등에서 같은 역할을 하는 응용 프로세서(AP)입니다. 세계 반도체 시장의 비중은 비메모리 반도체가 훨씬 더 큽니다. 메모리 반도체가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기준 23.7%(804억달러)이죠.
그런데도 메모리와 비메모리를 모두 합친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CPU 생산을 사실상 독식하는 인텔에 이어 나란히 2, 3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비결은 수 많은 업체들이 난립해 시장을 나눠먹는 비메모리 반도체와 달리 메모리 반도체는 우리나라 두 업체를 비롯해 미국 마이크론과 일본 도시바 등 3, 4곳 중심으로 재편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근 중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PC,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 구매가 줄어들다보니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의 수익도 함께 떨어지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바닥까지 내려가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합니다. 반도체 산업은 초기 비용 부담이 크고 첨단 미세공정 등 기술과 구매업체들의 신뢰 확보가 관건이어서 신규 업체들의 진입이 어렵습니다. 반도체 회로를 그리는 데 사용되는 노광장비만 대당 800억~1,500억원 정도여서 삼성전자가 경기 평택시에 짓고 있는 세계 최대 반도체 단지는 1단계 사업비로만 약 16조원이 들었습니다. 이와 함께 기술력을 계속 향상시켜야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에 기존 업체들이 유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국내 업체들이 세계 불황과 후발주자들의 도전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현재 잘 하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최강자의 입지를 확실히 다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 두 업체는 첨단 기술 개발을 통해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 생산을 늘리고 원가를 낮춘다는 전략입니다.
이서희기자 sh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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