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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엄마의 아빠트

입력
2015.09.30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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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그늘을 떠나 코 베어간다는 서울에서 자취 생활한지 벌써 10년차. 마트에 가서 장이라도 볼라치면 ‘아, 이거 분명히 혼자 다 못 먹을 텐데’ 하다가도 ‘아, 버릴 때 버리더라도 먹고 싶은 건 먹어가며 일 하자’ 음식에 한 맺힌 사람처럼 이것저것 잔뜩 사 들고 집에 온다.

며칠 지나 시골에 계신 엄마가 갑자기 올라오시면 “냉장고에 먹지도 몬할 거 뭐 이래 잔뜩 사 놨노! 혼자 산다고 돈 아까운 줄 모르고” 하며 혼내시는데, 그럴 때마다 ‘내 돈 벌어 내가 쓰는데… 왜’ 하는 억울한 마음에 울컥한다. 그래도 “겨우 이틀밖에 안 지났네” 하고 먹은 곰탕 때문에 식중독에 걸려서 요단강 건널 뻔 하고 나서부터는 한꺼번에 많이 사는 그 병은 조금 고쳤다.

한 달 번 돈으로 방세며 교통비에 식비, 생활비를 내고 나면, 아, 정말 월급 너는 스치듯 안녕이구나. ‘통장에 월급이 묻었을 땐 카드로 감쪽같이 지워주세요’라던 웹툰이 결코 웃기지 않더라니. ‘안되겠다. 허리띠를 좀 더 졸라매야겠어. 여기서 버틴 게 얼만데. 힘들다고 하면 분명 다 때려치우고 내려와서 미나리 농사나 도우라고 잔소리 하실 게 뻔해. 난 끝까지 살아남겠어.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당장은 비싼 월세부터 줄여야겠다 싶어 여기 저기 알아보다가 독립여성 4명이 쉐어해서 산다는 공동주택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이사 전에 한번 밥이나 먹자며 초대받은 자리 빈손으로 가는 건 또 예의가 아니지. 나의 센스를 보여줄 수 있는 또 다른 기횐데 무얼 사가누~ 상큼한 내 이미지와 비슷한 과일을 살까 아님 두루두루 잘 살자고 두루마리 화장지를 살까.

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고민하며 걸어가고 있는데 은행 앞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나를 불러 세우셨다. “학상! 쩌그 학상.” 행여나 내가 딴 데로 갈까 싶었는지 아주머니가 걷는 속도를 높인다. 어, 그런데 절뚝거리는 모습이 한 눈에 봐도 다리가 불편하시구나 싶다. 네? 저요? 어. 거기 계세요. 제가 갈게요.

“학상. 이거 좀 넣어줄 수 있나. 내가 이걸 할 줄 몰러서.”아주머니의 손에는 5만원이 한 장씩 꽂혀있는 기업은행 주택 청약저축통장 두 개가 들려 있었다. “어떤 아자씨가 안 된다고 그라는디, 내가 이걸 할 줄 몰라가꼬 그라는디.”아주머니는 글을 읽을 줄 모르는 것 같았다. 하나는 노란색 테이프로, 하나는 청 테이프로 아들들의 통장을 구별하였다. 은행으로 모시고 들어가 첫 번째 통장을 기계에 밀어 넣고 오만원을 입금했다. 지직지직. 우리 재철이꺼는 얼마가 입금되었냐고 물어보신다. 255만원이요.

이번엔 노란 테이프가 붙은 통장을 집어넣었다. 겹쳐 있던 오만원권은 하도 꼬깃꼬깃해서 기계가 인식하지 못하고 몇 번이나 뱉어낸다. 지직지직. 한참 뒤 그제서야 통과되었나 했더니 이내 모니터에 파란 글자가 뜬다. ‘세금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금액이 초과되어 솰롸솰롸’어. 여긴 더 이상 안 들어가겠는데요? “아 그럼 우리 승철이 오만원은 못 넣능거여? 애들 아빠트 사게 이거 빨리 채워줘야 하는디. 내가 아껴서 3년이나 넌는디.” 그 동안 고생하셨네요, 벌써 큰 아들 통장은 꽉 채우셨대요. 내일 은행 문 열면 다시 오셔서 상담 받으시면 될 것 같아요. “고생은 무슨. 내가 고생은 무슨…. 울 아들덜이 고생해째. 아이코오 그려. 고마와요 학상.”

아주머니는 통장 한 개가 만기되었다는 말에 잠시 웃더니 다시 절뚝거리면서 뒤로 돌아 끌고 왔던 수레를 손에 쥔다. 세제를 사면 사은품으로 주는 카트 안엔 팔 것인지, 팔고 남은 것인지 모를 나물들이 잔뜩 실려 있다. 아들들의 아빠트가 잔뜩 실려 있다. 우리 엄마 손에도 내 아빠트가 잔뜩 들려있겠지. 내 손엔 남에게 줄 과일바구니가 들려있는데.

남정미 웃기는 서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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