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9월 30일, 29세 흑인 청년 제임스 메리디스(James Meredith, 1933~ ㆍ사진 가운데)가 미시시피대학 학생으로 첫 등교했다. 그날 아침 메리디스의 좌우에는 미 법무부 인권국 수석검사 존 마이클 도어(2014년 12월 5일자 ‘가만한 당신’ㆍ오른쪽)와 연방 보안관이 있었고, 연방군 1만여 명도 거리와 교정에서 그의 ‘등교’를 호위했다. 그들이 경계했던 것은, 주정부와 주방위군, 대학 당국과 주변에 선 수많은 백인 시민ㆍ학생들이었다. 메리디스는 1846년 미시시피 대학이 개교한 이래 116년 만의 첫 흑인 학생이었다.
캔자스 주 ‘브라운 대 포티카 교육위원회(Brown V.S. Board of Education)’소송에 대한 연방대법원 판결이 나온 것은 1954년 5월이었다. “동일한 교재와 커리큘럼을 사용하므로 차별이 아니다”라고 판결한 주 대법원의 공립학교 흑백분리정책에 대해 연방대법원은 “분리가 바로 차별”이며 “분리는 연방 수정헌법 14조 위반”이라고 전원 일치 판결했다.“구분하지만 평등하다 Separate but Equal”는 이른바 ‘짐 크로(Jim Crow)법의 심장을 찌른 판결이었다.
메리디스가 중ㆍ고교를 다니던 시절의 미시시피가 그러했다. 식당 화장실 버스는 물론이고, 공원벤치 수도꼭지까지 흑인용 백인용이 따로 있었다. 그는 흑인 고교를 졸업했고, 흑인 대학(잭슨스테이트대)을 다녔다. 공군에 입대해 10년간 복무하면서 54년 판결 이후 로자 파크스 버스 보이코트 운동을 비롯한 50년대의 흑인 인권운동의 진전을 지켜봤을 것이다. 그리고 제대 이듬 해인 61년 미시시피 대학에 편입학 원서를 제출했다. 그는 두 차례 등록을 거부 당했고, 소송과 청문회와 재판을 거쳐야 했다. 백인 시민ㆍ학생의 시위가 잇따랐고 등교일 하루 전 두 명이 숨지기도 했다.
입학은 물론 시작일 뿐이었다. 63년 8월 정치학 학사로 무사히 졸업하기까지 메리디스는 온갖 멸시와 따돌림, 생명의 위협을 견뎌야 했다. 그가 졸업하던 해, 두 번째로 입학한 흑인 청년 클리브 맥도웰은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총기를 휴대했다가 불법무기 소지 혐의로 적발돼 퇴학 당했다. 두 번째 흑인 졸업생은 64년 역사학과에 입학한 클리블랜드 도널드 주니어였다.
졸업 후 메리디스는 인권운동가로 활약했고, 미시시피대는 입학 40주년이던 2002년 교정에 그의 동상을 세웠다. 03년 그의 아들이 미시시피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메리디스 입학 50주년이던 2012년 미시시피대 교정에서는 약 400명의 학생이 흑인 차별 구호를 외치며 오바마 재선 반대 시위를 벌였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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