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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향신료가 빚은 아랍의 맛, 낯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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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향신료가 빚은 아랍의 맛, 낯설지 않았다

입력
2015.09.29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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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랄 인증 식재료만으로 요리

수요 급증, 세계 식품시장의 16%

정결하게 도축된 육류만 사용

주요 단백질 공급원은 병아리콩

고기와 달리 아무 제한이 없는 해산물은 할랄푸드의 주요 식재료다. 10여가지의 향신료로 밑간 한 왕새우 그릴 바비큐가 색다른 아랍의 풍미를 돋운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고기와 달리 아무 제한이 없는 해산물은 할랄푸드의 주요 식재료다. 10여가지의 향신료로 밑간 한 왕새우 그릴 바비큐가 색다른 아랍의 풍미를 돋운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아랍식 크로켓인 팔라펠. 난에 토마토, 채 썬 채소와 함께 싸서 소스에 찍어먹는다. 신상순 선임기자
아랍식 크로켓인 팔라펠. 난에 토마토, 채 썬 채소와 함께 싸서 소스에 찍어먹는다. 신상순 선임기자

‘할랄푸드’라는 단어에 파블로프적인 식욕이 자극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부족한 경험과 넘치는 편견 때문이다. 입맛이라는 게 사실 대단히 보수적인 것이어서 낯선 식재료, 낯선 향신료에 적응하는 것은 사상전향만큼이나 어렵다. 베트남 쌀국수가 처음 들어왔을 때 고수의 향에 역겨움을 느끼지 않았던 사람은 거의 없을 것.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이 고수향 때문에 쌀국수를 먹는다.

국내 특급호텔에 처음으로 할랄푸드 전문점이 생겼다.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가 요르단 출신의 할랄푸드 전문가 알리 아마드(30) 셰프를 영입, 한ㆍ중ㆍ일ㆍ인도 음식을 제공하는 ‘아시안 라이브’ 레스토랑에 새로이 할랄 오픈키친 코너를 마련했다. 지금도 일부 중동음식이 메뉴판에 들어 있기는 하지만, 할랄 인증을 받은 식재료로 요리한 할랄푸드 전용 메뉴판이 마련된 것은 국내 호텔 중 최초다. 아마드 셰프는 요르단의 유명 레스토랑과 두바이의 특급호텔에서 경력을 쌓은 할랄푸드 전문가로, 패션 모델 경력이 있는 미남 셰프. 최근에는 전도연 주연의 영화 ‘협녀-칼의 기억’에 전도연의 아랍인 카운셀러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이달 15일부터 선보이기 시작한 할랄음식들을 맛봤다. ‘아랍의 맛’은 의외로 낯설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자꾸 내뱉게 되는 찬탄의 단어 “맛있네”. 억양을 설명하지 않으면 오해의 소지가 있다. 한껏 어미를 올린 어조로 말해야 한다. “맛있네?”

아랍의 소울푸드 후무스. 할랄푸드의 주요 식재료인 병아리콩을 삶아 만든다. 신상순 선임기자
아랍의 소울푸드 후무스. 할랄푸드의 주요 식재료인 병아리콩을 삶아 만든다. 신상순 선임기자

팔라펠을 곁들인 아랍식 소고기 등심 스테이크.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 제공
팔라펠을 곁들인 아랍식 소고기 등심 스테이크.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 제공

정결하고 건강한 ‘아랍의 맛’

인터컨티넨탈 호텔이 작은 규모로나마 할랄푸드 전문코너를 오픈한 것은 아랍 고객의 수요 때문이다. 국제 컨퍼런스 등이 많이 열리는 입지조건상 아랍 투숙객이 많지만, 이들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할랄푸드는 거의 없다시피 했기 때문. 투숙객 수로는 전체의 3~4%밖에 되지 않지만, 이들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나 될 정도로 아랍의 손님들은 ‘큰손’들이다.

할랄푸드란 이슬람교가 허용하는 음식, 즉 신이 허락한 음식을 뜻한다. 코란은 돼지고기를 먹지 말 것과 이슬람 신자에 의해 ‘신의 이름으로’ 도축된 정결한 고기만 먹을 것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소고기나 양고기도 잔인하게 도축됐거나 자연사 또는 상위 먹이사슬에 의해 도살된 고기는 먹을 수 없다. 라면 수프에 들어간 돼지고기 육수도 먹어서는 안 되며, 부정한 고기는 화장품에 들어간 성분으로도 사용이 불가능하다. 이런 부정한 음식, 허용되지 않는 음식은 ‘하람’이라고 부른다. 알라신의 이름으로 정결하게 도축된 소고기, 양고기, 염소고기, 닭고기 등과 모든 해산물, 과일, 채소, 곡물 등이 할랄음식에 해당한다. 깨끗하고 안전한 음식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지면서 할리우드 스타들이 할랄푸드를 추종하기 시작했고,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급증했다. 세계 식품 시장의 16%를 할랄푸드가 차지하고 있다.

“할랄푸드는 100% 할랄이어야 해요. 할랄음식의 고객들은 매우 민감합니다. 100% 할랄음식이라는 확신이 없으면 아무것도 먹지 않아요.” 아마드 셰프는 “전 세계의 수많은 식당들이 할랄푸드가 뭔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며 “아무리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강조해도 막상 요리가 나오면 베이컨이 들어있는 식”이라고 말했다. “항의를 하면 베이컨이 돼지고기냐 묻는 경우도 있었다”고.

실제 호텔에서는 100% 할랄 인증 식재료를 사용하는 아시안 라이브의 메뉴판이 나오고 나서 이슬람 고객들의 주문 비율이 3배 이상 늘어났다. 인터컨티넨탈호텔 마케팅ㆍ커뮤니케이션팀의 김성규씨는 “전에는 메뉴판에 중동 음식이 있어도 아예 주문하지 않는 이슬람 고객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메뉴판에 명기된 100% 할랄 인증 식재료 덕분에 안심하고 음식을 선택하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시안 라이브는 파키스탄에서 수입하는 할랄 인증 쌀 이외에 전 재료를 호주산으로 쓰고 있다. 국산 재료는 할랄 인증절차가 까다로워 전혀 사용할 수 없는 형편이다.

아랍의 소울푸드 ‘후무스’와 ‘팔라펠’

아시안 라이브의 할랄푸드는 전채요리와 샐러드, 수프, 해산물, 육류 케밥, 더운 요리, 사이드 디시와 후식으로 구성돼 있다. 할랄 인증이라는 제도를 통해 운용되는 식재료에 대한 엄격한 제한은 할랄퀴진의 근본 요건이다. 하지만 식재료의 엄격한 기준 외에 할랄푸드를 정의할 수 있는 조건이 있다. 바로 다양한 맛과 향이다.

중동 전역의 대표적인 요리들을 한데 모은 메뉴판에서 가장 눈에 띄는 식재료는 병아리콩. 아랍 지역의 주요 단백질 공급원으로 ‘가난한 자의 고기’로 불린다. 중동 지역에서 ‘영혼의 음식’으로 불리는 후무스와 팔라펠에도 들어가는 식재료다. “후무스와 팔라펠은 한국의 김치 같은 음식이에요.” 아마드 셰프는 “갈비탕을 먹어도 꼭 김치가 있어야 하는 것처럼 어떤 요리를 먹더라도 한 접시의 후무스와 팔라펠은 아랍인의 밥상에 반드시 올라와야 하는 애피타이저”라고 설명했다.

언뜻 감자를 으깨 만든 샐러드처럼 느껴지는 후무스는 병아리콩과 올리브오일을 주재료로 만드는데, 여기에 으깬 양고기를 곁들이거나 병아리콩을 검은콩으로 대체하는 식으로 자유롭게 변주할 수 있는 음식이다. 빵이나 샌드위치에 소스처럼 찍어먹거나 발라먹기에도 좋다. 튀김 요리인 팔라펠은 멕시코 음식 타코처럼 난에 토마토와 채소를 함께 싸서 갈릭소스나 스파이시소스에 찍어먹는다. 불린 병아리콩에 양파, 마늘, 청고추, 고수를 넣고 곱게 간 후 후주, 소금, 팔라펠파우더를 넣어 튀긴 팔라펠은 일종의 중동식 크로켓(고로케)이다.

까다로운 제한이 가해지는 육류와 달리 사용에 제한이 없는 생선은 ‘하얀 고기(white meat)’로 불리며 할랄퀴진의 핵심 파트를 차지하는 식재료. 아마드 셰프가 추천한 할랄푸드는 아랍식 왕새우 바비큐였다. 서양의 왕새우 바비큐와 뭐가 다른지 묻자 “향신료”라는 대답과 함께 향신료의 ‘발상지’에서 온 셰프답게 다양한 향신료의 열거가 이어졌다. 양파가루, 마늘가루, 생강가루, 칠리파우더에 중동 특유의 허브인 코리안더, 커민가루, 혼합 향신료인 마살라 가루…. 등을 갈라 내장을 제거한 왕새우에 이 가루들로 밑간을 한다. 그리고 그릴에 구우면 끝. 다양한 향신료를 사용하는 밑간이 맛과 향의 핵심이다.

“할랄푸드의 특징은 무수한 향신료가 빚어내는 다양한 맛에 있죠. 기본적으로 조리법은 서양요리와 큰 차이가 없어요. 하지만 ‘할랄 테이스트’라는 게 존재해요. 요르단 음식, 두바이 음식, 사우디아라비아 음식 다 다릅니다. 그렇지만 거기엔 공통적으로 ‘할랄 테이스트’가 있어요.”

“무슬림이면 누구나 다 갖고 있다”는 할랄 테이스트에 한국인의 혀도 차츰 적응할 것이다. 세계는 넓고 맛있는 음식은 많다. 때로는 그게 또 생의 보람이다.

박선영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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