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 아닌 시대 흐름
英 토드모든 100년의 역사 자랑
2018년 식량 100% 자급 목표
美선 영부인까지 나서 '경작 중'
파리에도 100여개 텃밭 공동체
지역사회 구심점 역할
환경·도시 생태계 복원 이어져
정보·노동 나누며 유대감 부쩍
개도국선 일자리 창출도

저명한 프랑스 사회학자 미셸 마페졸리는 개인주의 시대를 넘어 타인과 관계를 새롭게 맺으며 자연의 신비를 되찾아가는 탈근대 도시인을 ‘도시부족’이라고 명명했다. 그 바탕에는 ‘도시농업’의 세계적인 부상이 있다. 1980년대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먹거리를 대량 생산하는 시스템에 반대해 직접 텃밭을 가꾸기 시작하면서 보편화된 도시농업은 화두가 돼 있다.
지난해 서울도시농업박람회 국제컨퍼런스에 참석한 캐나다 도시농부 제니퍼 코크럴킹은 “대규모로 식량을 생산해 다른 지역으로 운송 후 소비하는 현 시스템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사실 에너지 낭비와 환경오염을 초래하기 때문에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공장식 축산을 예로 들며 미국에서 소비되는 항생제의 70%가 가축에 사용되는 등 안전한 먹거리를 보장하지 못한다고 설파했다. 더 안전한 농축산물을 갈구하는 사람들은 식량공급 사슬을 줄이기 위해 손에 흙을 묻히길 주저하지 않는다. 거창한 농사는 아니어도 직접 먹거리를 생산하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도시농업이 가장 활성화된 곳은 영국이다. 역사가 100년이 넘는다. 영국 북부 작은 도시 토드모든은 마을 곳곳에 허브와 채소 등을 가꿀 수 있는 화단을 마련해 놓을 정도로 주민 참여가 적극적이다. 씨앗을 교환하고 관련 정보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지역사회 유대감도 끈끈해졌다는 게 현지 언론의 평가다. 토드모든은 가축까지 직접 기르고, 달걀 등 산물을 나누는 등 2018년까지 식량 100% 자급 목표를 세울 정도로 도시농업에 올인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때 만들어진 런던 지하방공호에 LED 조명을 설치해 샐러리나 파슬리, 겨자잎 등을 수경 재배하는 ‘그로잉 언더그라운드’도 영국의 자랑거리다. 런던에서는 전체 가구의 14%가 정원에 농작물을 기르고 있다. 공공기관의 임대 텃밭을 얻는데 10년 이상 기다려야 할 정도다.

산업화에 따라 도시 외곽으로 밀려났던 파리의 도시농부들도 최근 소규모 도시농업 활성화로 다시 기지개를 펴고 있다. 농촌진흥청의 ‘세계의 도시농부들’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파리에는 100여 개의 공동체 텃밭이 꾸려지는 등 기근 등이 몰아친 17세기 후반 도시농부들에 의해 식량 안보가 지켜졌던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프랑스 농촌진흥청은 2011년부터 파리 시민이 식량을 자급하기 위한 기술을 연구 중이며, 파리 시립 유기농 농장에서는 민관 협동으로 소 염소 돼지 닭 토끼 등을 함께 키우고 있다.
미국 역시 연방정부 지원 하에 도시텃밭 가꾸기가 활발하다. 뉴욕에만 옥상 텃밭을 가진 빌딩이 600개 이상이다. 미셸 오바마 미 대통령 부인도 수년째 백악관에 텃밭을 가꾸며 그 가치를 설파하고 있다. 패스트푸드에 길들여진 미국민들이 건강한 먹거리를 먹도록 독려하기 위해 시작된 것으로 미 전역에 큰 파급효과를 냈다. 전미정원협회에 따르면 현재 4,200만 가구(전체의 35% 정도)가 직접 정원 가꾸기를 하고 있다. 시카고에서는 빈민층 청소년들이 농산물 재배부터 판매까지 참여하고, 도시 빈민들이 스스로 농산물을 길러 먹을 수 있도록 버려진 땅을 이용한 농사운동도 한창이다.
독일은 방치된 공용지를 적극 활용한다. 베를린 주민들은 도심의 버려진 땅을 2009년부터 임대해 훌륭한 텃밭으로 만들었는데, 지금은 베를린 대표농장 ‘공주님들의 정원’으로 변신했다. 이곳은 농작물 수확뿐 아니라 녹지공간으로 기능해 삭막한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도시 속의 작은 정원으로 우리 지자체에서도 벤치마킹한 ‘클라인가르텐’은 독일 국민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근원이기도 하다. 스트레스에 절은 도시인들이 피로를 씻을 수 있는 주말농장으로 독일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곳곳에서 클라인가르텐을 볼 수 있다. 주정부가 지역협회에 임대하고, 이것을 다시 소속 단지협회나 개인 회원에게 재임대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정원의 3분의 1 이상 작물로 재배하도록 하고 관리 소홀 시 강제 퇴출되는 등 규정도 엄격하다.
소규모 집약 농업(스핀)이 일반화한 캐나다나 유기농 농업의 메카로 떠오르며 20만명 가까운 도시농부를 배출한 쿠바 등 친환경 도시농업은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뻗어나가고 있다. 개발도상국은 농산물 저장과 운송이 발달하지 않아 자구책으로 도시농업을 지원 중이다. 볼리비아는 수도 라파스의 빈곤층 1,500여 가구를 대상으로 소형 온실에서 과일이나 채소를 키우는 기술을 전수하는 식으로 도시농부를 양성하고 있다. 아프리카 콩고는 5개 도시에 1,600헥타르의 정원을 조성해 2만명에게 분양했다. 유엔개발계획(UNDP)에 따르면 세계 도시농부 숫자는 8억명을 넘어섰다. 도시농업은 한때의 유행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발전할 분야라는 게 도시농업 전문가들의 얘기다. 단순히 작물 재배에 그치지 않고 환경, 도시 생태계 복원 등 새로운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농촌진흥청 도시농업연구팀 유은하 박사는 “국가별로 도시농업에 대한 접근은 각각의 사정에 따라 전개되고 있으나 농업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공동체회복이나 환경복원 같은 도시화가 갖는 문제점을 해결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채지은기자 cj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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