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 메카 순례를 말하는 하지(hajj)는 무슬림의 의무인 ‘이슬람의 다섯 기둥(Arkan al-Islam)’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하게 꼽힌다. 나머지 넷은 신조암송, 하루 5회 기도, 자선, 라마단 금식 등이다. 코란 제22장엔 하지 시기를 이슬람력 마지막 달인 12월의 첫 10일간(올해는 지난 21일 시작)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매년 하지 기간 중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 일대는 일생에 단 한 번만이라도 성지를 순례하려고 모여든 수백 만 명의 전 세계 무슬림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 무슬림들은 닷새에 걸친 순례를 첫날 메카에서 약 19㎞ 떨어진 미나 평원에 집결해 밤을 보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다음 날엔 몸을 정화하는 의미로 이음매가 없는 흰 순례복을 입고 메카로 들어가 성소인 ‘카바’ 주위를 일곱 바퀴 도는 ‘타와프’ 의식을 치른다. 이후 순례자들은 이슬람교 창시자인 무함마드가 최후의 설교를 한 아라파트 언덕에 올라 기도하고, 다시 미나 평원의 자마라트에서 사탄을 상징하는 3개의 돌기둥에 돌을 던지는 의식을 한다. 순례는 다음 날 알라에게 바치는 희생제 ‘이드 알-아드하’를 지내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 메카와 미나 평원, 아라파트 언덕을 잇는 반경 20㎞ 안팎의 순례 경로에 수백 만 명이 몰리다 보니 일대는 온통 경건하면서도 열기로 들뜬 축제의 장으로 바뀐다. 미나 평원은 순례자들의 텐트로 가득 차고, 기념품점과 예물 등을 파는 노점상, 간이 이발소들이 즐비해진다. 2007년의 한 기록을 보면, 행사 근로자와 청소부 2만1,000명이 투입되고 청소차 636대가 가동돼 매일 1만톤의 쓰레기를 처리할 수 있도록 했다. 희생제물로 준비된 양과 낙타만도 수만 마리에 이른 것으로 집계됐다.
▦ 신앙심은커녕 특별한 종교조차도 갖지 못한 사람으로서는 하지에 대한 무슬림들의 열정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이교도들로서는 알 수 없는 뭔가 경건하고 고매한 삶의 차원을 누리는 것 같아 부럽기도 하다. 그러나 보다 높은 영혼의 영역인 신앙심에서 비롯된 하지에서 후진적이고 몽매한 참사가 끝없이 되풀이 되는 건 아이러니다. 사우디 정부도 매년 사고 방지를 위해 안간힘을 써왔지만 이번에도 결국 1,500명 이상이 죽거나 다친 대형 참사가 벌어졌다. 이 역시 가늠할 수조차 없는 신의 깊은 뜻일까?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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