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위협과 공존의 양면적 존재
공허한 통일논의 매달릴 필요 없어
공단 수십 개 건설해도 대박 효과
미국 수도 워싱턴의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공원’에 들렀을 때 참전용사들의 동상이 늘어선 대리석 바닥에 새겨진 글귀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Our nation honors her sons and daughters who answered the call to defend a country they never knew and a people they never met.’ “전혀 알지 못했던 나라,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을 지키라는 부름에 응했던 미국의 아들과 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내용이다. 관광객들도 흔히 접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5월 미국 의회 상하원 합동연설에서도 인용한 글귀지만, 직접 읽어보니 가슴이 뭉클했다.
이곳에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과 유엔군의 사상자와 실종자, 부상자, 포로의 숫자도 대리석에 꼼꼼하게 새겨져 있다. 이역만리 떨어진 한국에서 전쟁을 치르다 죽어간 용사들의 숫자만도 미군과 유엔군을 합치면 67만 명을 넘고 실종자 47만 명, 부상자 110만 명, 포로 10만 명 등이다. 갓 태어난 대한민국의 방어를 위해 이렇게 많은 외국의 젊은이가 희생되었다는 게 새삼 놀라웠다. 인근에 크게 새겨진 다른 글귀도 눈에 띄었다. ‘Freedom is not free(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미국이 한국전쟁에 참여한 것은 자유진영을 수호하기 위함이었다는 의미겠다.
1953년 7월 정전협정을 맺은 이후 무려 62년이 지났지만, 한반도는 여전히 북한의 도발과 위협이 상존하는 분쟁지역으로 남아있다. 김대중ㆍ노무현 정부 시절 한때 평화로운 시기가 있었으나 이명박ㆍ박근혜 정부에서는 다시 남북 대결구도가 심화하고 있다. 얼마 전 남북한은 고위급 접촉에서 10월20일부터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하고 이른 시일에 남북적십자 회담을 개최하자고 합의했으나,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문제 등이 불거지면서 이마저 이행여부가 불투명하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박 대통령이 밝힌 ‘통일 대박’ 희망도 요원하다.
지난주 미국 국무부에서 마크 램버트 한국과장을 만나 북한체제가 언제 붕괴할 것으로 예상하는지 물어봤다. 통일이 언제쯤 가능하다고 보느냐는 물음이다. 그는 “솔직히 모르겠다”고 짧게 대답했다. 하긴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통일 논의는 그래서 늘 공허하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유난히 통일 논의가 활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경제발전 속도가 빠르고 세계의 이목이 한반도에 쏠린 때였으니 희망이 부풀 만했다. 구 소련의 고르바초프 공산당 서기장도 개혁ㆍ개방에 열을 올렸다. 당시 학계에서 예상하던 한반도 통일 예상 시나리오는 대충 이랬다. “김일성 사후 김정일이 집권하면 장악력이 약해지고, 개혁ㆍ개방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 결과 북한의 민주화가 촉진되어 우리와 손을 맞잡으면 통일을 이룰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것이다.” 1990년 10월 독일이 통일되고 이듬해 12월 구 소련이 붕괴하면서 희망은 더욱 커졌다. 하지만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에도 한반도에는 변화가 없었다. 이후 추진된 햇볕정책도 별무소득이었고, 2011년 김정일 사망으로 김정은이 등장한 이후 북한의 행태는 통일과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
북한은 양면적 존재다. 안보를 위협하지만, 개성공단처럼 큰 이득을 안겨 줄 수도 있다. 박 대통령도 유엔 총회 참석 차 출국하기에 앞서 “북한은 한국 안보에 대한 위협이자 한반도 통일 달성을 위한 잠재적 동반자”라고 밝혔다. 특히 개성공단을 경험한 중소기업 관계자들은 “한국이 또 한 번 도약할 수 있는 마지막 무대가 북한”이라고 입을 모은다. 굳이 통일이 아니라 북한에 공단만 수십 개 건설할 수 있어도 대박이라는 말이다. 북한이 자체 생존을 위해 전 세계를 상대로 핵 위협을 가하는 상황에서 통일이라는 말로 북한을 자극할 이유도 없다. 북한 지역에 공단을 건설하고 경제협력을 확대해 실익을 챙기는 실용주의적 접근이 오히려 통일을 앞당기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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