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한국형 전투기(KFX) 사업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차기 전투기로 선정된 F-35 도입과 관련해 핵심 기술 이전이 무산되면서 2025년까지인 KFX 개발 계획에 차질이 빚어진 데 따른 것이다. 조사 결과에 따라서는 18조원 규모의 초대형 국책사업이 중대 기로에 서게 될 것으로 보인다.
위상배열(AESA) 레이더 등 4가지 핵심 기술을 미국에서 넘겨받지 못하는 것과 관련해 방위사업청의 잘못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방사청은 지난해 록히드마틴사와 F-35A 도입 계약 체결 직후 “기술 이전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으면 항공기 제작사의 이행보증금을 몰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 정부의 반대로 기술 이전이 어렵게 되자 “핵심 기술을 이전하지 않는다는 미국의 정책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실토했다. 애당초 되지도 않을 일을 가능한 것처럼 거짓말을 한 셈이다.
이뿐이 아니다. 방사청은 4건을 제외한 나머지 기술 21건은 이미 미 정부로부터 승인이 난 것처럼 설명했지만 이 역시 11월이나 돼야 결정이 나온다고 번복했다. 다른 기술 이전도 그때 가봐야 알 수 있다니 방사청의 잇따른 말 바꾸기에 불신이 커지지 않을 수 없다.
더 기막힌 것은 미 정부의 이전 불허 결정이 지난 4월에 나왔는데도 반년 가까이 숨겨왔다는 점이다. “기술적 대안을 고민하느라 공개가 늦어졌다”고 하지만 국정감사가 아니었으면 얼렁뚱땅 넘어가려 했을 개연성이 높다. 심지어는 이런 중요한 사실을 청와대에도 보고하지 않았다고 하니 그 대담함이 놀라울 정도다. 일각에서는 록히드마틴이 제안서를 낼 때 이미 4개 기술 이전이 어렵다고 했는데도 방사청이 F-35A로 밀어붙인 배경을 의심하고 있다. 지난해 차기 전투기 선정 당시 F-35A와 경쟁을 펼쳤던 미국 보잉(F-15SE)과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유로파이터)은 이들 4개 핵심 기술을 주겠다고 약속했는데도 탈락했기 때문이다.
2020년대 초반까지 구형 F-4와 F-5 등 100대 이상이 퇴역해 공군 주력 전투기는 300대 수준으로 줄어들게 된다.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한 KFX사업이 차질을 빚게 됐으니 전력 공백을 어떻게 메울지 걱정스럽다. 핵심 기술 이전 무산으로 방사청은 이들 기술을 국내 개발이나 제3국과의 협력 개발로 얻어야 하지만 실현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기술 개발 성공 여부는 물론 소요예산과 시기 등 모든 게 불확실한 탓이다. 이번 사안은 청와대 조사로 그칠 일이 아니다. 단순한 정책 결정의 허점 차원을 넘어서 부정 비리 소지가 다분하다. 사안의 중대성에 비추어 수사 당국이 직접 의혹을 파헤치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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