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사실 감추고 생모 간호한 英 휘셀
어린 나이에 입양돼 뒤늦게 생모를 찾은 영국의 간호사가 9년간 자신이 딸이라는 사실을 숨긴 채 아픈 어머니를 간호한 사연이 화제가 되고 있다. 영국 일요신문 선데이 머큐리가 지난 13일 보도한 이 이야기는 조만간 책으로도 나오고 할리우드에서는 영화 제작까지 검토되고 있다.
영국 버밍엄에 사는 필리스 휘셀(59)은 4살 때 입양돼 친어머니가 결핵으로 죽었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 생모인 브리짓 라이언이 술만 마시면 난동을 피우는 심각한 알코올중독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휘셀이 충격 받을 것을 염려한 양 부모의 배려였다. 그러나 휘셀은 자신의 친어머니가 살아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언젠가 어른이 되면 꼭 엄마를 찾아가겠다고 혼자 말하곤 했다”고 회상했다.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를 보낸 휘셀은 졸업 후 간호사가 됐고 결혼을 해 가정도 꾸렸다. 어른이 되자 친부모에 대한 정보도 찾아낼 수 있었다. 정신적인 충격에 대비해 충분한 상담을 받은 뒤 그는 출생증명서를 열람할 수 있었다. “입양되기 전 생후 8개월 때부터 살았던 고아원을 찾아갔어요. 놀랍게도 그때부터 일하고 있는 분이 있더군요. 하지만 친엄마에 대해 말하지 않으려 했어요. 뭔가 엄마가 못마땅한 눈치였죠. 어린 아기를 고아원에 버렸다는 점 때문이라고 추측했지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어요.”
주위에서 더 이상 생모를 찾지 말라고 만류하자 휘셀은 어머니가 어떤 사람인지 더 궁금해졌다. 탐정처럼 수소문을 해가며 친모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생 끝에 어머니 라이언을 찾았을 때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어릴 적부터 상상했던 어머니 상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라이언은 만성 알코올중독으로 건강이 몹시 나빴고 정신적으로도 불안했다.
휘셀은 어머니에게 자신이 딸이라고 밝히지 않았다. 대신 간호사로서 직업 정신을 발휘했다. 지역 방문간호사였던 휘셀은 순회 간호 명단에 비공식으로 어머니를 포함시켰다. 어머니를 방문할 때마다 휘셀은 조금씩 베일에 싸여있던 어머니와 자신 사이의 비밀을 알게 됐다. “엄마에게 깨끗한 옷을 가져다 주고 목욕을 도왔어요. 저를 포함해 다섯 아이를 낳았다는 이야기도 들었죠. ‘꼬마 필리스’라며 제 생일을 정확히 말했던 날은 제 생애 최고이자 최악의 하루였어요.”
휘셀의 간호는 1981년부터 1990년까지 9년간 이어졌다. 라이언은 74세에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휘셀은 라이언에게 자신이 딸이라는 사실을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 휘셀은 지금은 양로원에서 노인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다. 휘셀은 자신의 이야기를 ‘티퍼레리의 메리 찾기’(Finding Tipperary Mary)라는 책으로 엮어 11월에 펴낼 예정이다.
휘셀의 사연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그 중에는 영화 ‘블레이드 러너’ ‘에이리언’ ‘글래디에이터’ ‘마션’ 등을 연출한 영국 출신 리들리 스콧 감독도 있다. 스콧의 영화제작사 스콧 프리 필름스는 휘셀에게서 책의 판권을 구매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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