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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도자기]송대 청자의 자랑 비색청자 용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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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도자기]송대 청자의 자랑 비색청자 용천요

입력
2015.09.24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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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천청유직구절연대반(지름 61.7cm)

이번에 소개할 '용천요'는 작품의 예술성에 비해 가격은 저렴한 중국도자기다. 최상품이 10억원 정도에 경매에서 낙찰되며 일반적인 상품은 2~3억원대에 거래가 성사된다.

아름다움에 비해 가격이 저렴한 것은 희귀할 수록 고가라는 골동품의 특성 때문이다.

'용천요'는 절강성 용천시를 중심으로 한 넓은 지역에 분포됐으며 중국 역사상 단일 요업으로는 가마의 숫자가 가장 많은 곳이다. 용천요는 남송대에 요지수가 50여개였으나 원대에 그 수가 200여 곳으로 증가했다. 1958년부터 1961년까지 절강성문물관리위원회가 시행한 발굴조사에서는 절강성 남부로부터 동해안 일대를 소급하는 넓은 지역에서 500곳이 발견됐다. 용천요 가마의 구조는 용요로서 길이가 80미터 이상이다. 큰 가마의 적재량은 2만에서2만5,000여점 정도로 엄청난 양의 도자를 생산했다. 이 시기 연간 1,000만점 이상이 생산됐다는 기록이 있다.

용천요는 우리에게도 친숙하게 알려져 있다. 신안 앞바다에서 인양된 원대 화물선에 수장되어 있던 많은 용천요 청자들이 그것이다. 경제적 가치로는 그 당시 많은 양의 용천요가 생산되었으며 전세계에 수출되었고 아직도 가장 많은 수량이 남아있다. 당연히 경제적 가치가 크진 않지만 그 아름다움은 높이 살만하다.

청나라 일명은 '남요필기'에서는 "송대 처주에서 나와 처주청이라 명하였다. 전왕때에 전해져 월요의 비색이라 칭해졌으며, 왕이 심히 아껴 귀히 여겨졌다. 그 흙의 성질은 견고하고 색이 희며, 유색은 푸르러 소위 '분골용천'이라 하였다"는 기록이 이다. 당 육구몽의 시에 '9월에 가을 바람 불고, 이슬이 내리면 월요가 열리는데, 천봉의 비취색을 빼앗아 온다'라고 한 것은 용천에 대해 읊은 것이다.

용천의 유색에는 매자청과 동청색이 있는데, 간혹 균열이 나있는 것은 더욱 귀하게 여겨졌다.

용천요는 북송대 월주요를 대체해가는 과정에서 나타난 청자 산지다. 남송대 용천요는 관요의 영향하에 이와는 다른 풍격의 청자로 탈바꿈했다. 특히 남송대 해외 사장을 개척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용천요 청자는 일본인들에게는 '침청자'로 플랑스인들에게는 '설랍동'으로 불리는 푸르고 광택 있는 유색을 자랑했다.

남송 엽치'탄재필형'에는 "강남에는 처주 용천현요가 있지만 유약이 두텁고 질이 좋지 않았지만 가마를 만들고 청자를 제작하였다"라는 기사가 있다. 송대 용천요는 정요 요주요 여요에는 못미치는 것으로 특히 유약이 두꺼운 것을 지적하였다.

용천요는 환원의 정도에 따라 분청(粉靑)과 매자청(梅子靑) 색상의 청자가 제작됐다. 남송왕조는 재정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외무역을 장려하는 차원에서 용천청자를 주요 상품의 하나로 생각하였다. 이에 따라 대량의 용천청자가 온주와 명주·천주·광주 등의 항구를 거쳐 조선과 일본·필리핀·인도·스리랑카·아프리카·유럽까지 수출되었다.

첸쩡샤는 '중한고미술협회'이사로 1,000여점의 중국도자기를 두루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CC'는 중국도자기(Chinese ceramics)를 뜻한다.

채준 기자 doorian@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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