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의 이슬람 성지 메카 외곽에서 24일(현지시간) 무슬림의 의무인 하지 계절을 맞아 순례길에 나선 신도들끼리 뒤엉켜 넘어지면서 최소 717명이 압사하고 863명이 부상하는 참사가 발생했다고 사우디 국영TV가 보도했다. 이는 1990년 메카와 미나를 연결하는 터널에서 1,426명이 압사한 이후 25년 만에 최악의 사고다.
외신과 사우디 구조 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전 메카에서 약 5㎞ 떨어진 미나에서는 무슬림 수십만명이 몰려 악마를 상징하는 기둥을 향해 돌을 던지는 의식이 진행됐는데, 이 과정에 사람이 몰려들며 사고가 발생했다. 불과 2주전인 11일에도 메카의 알하람 사원에서 증축 공사 중인 대형 기중기가 강풍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져 무슬림 순례객 111명이 압사하고 394명이 부상했다. 사우디 당국은 4,000명의 구조대를 현장에 보냈으나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부상자 운송이나 생존자 대피장소가 부족해 혼란이 계속 이어졌다.
하지 기간 유독 미나에서 압사사고가 반복되고 있다. 2006년에도 악마의 기둥에 돌 던지는 의식에 참가하려던 순례자 360여명의 압사사고가 있었고 2004년에도 순례자 사이의 충돌로 244명이 사망하는 등 1990년 이후 지금까지 8차례의 사망 사고가 미나에서 벌어졌다.
뉴욕타임스는 전세계 중산층 증가로 인해 최근 수년간 하지에 참여하는 무슬림이 크게 늘고 있는 게 반복되는 비극의 근본적 이유라고 분석했다. 올해 메카를 찾은 하지 참가자는 200만명으로 추산된다. 사우디 등 중동 전문 인류학자인 마다위 알 라쉬드 런던경제대학교수는 NYT인터뷰에서 “거의 연례행사로 비극적 사고가 되풀이되지만 아무도 책임질 사람이 없다”며 “전세계에서 몰려드는 하지 순례자를 수용하는 시설확충은 오로지 사우디 왕가가 부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는 이슬람교도가 지켜야 하는 5가지 기둥(실천영역) 중 하나로, 이슬람교도는 평생 한 번은 이를 수행하는 것을 의무로 여긴다. 금식월인 라마단이 끝나고 석달 뒤인 이슬람력 12월에 5일간 진행된다.
한편 주사우디아 한국대사관은 이번 사고에 한국인 피해는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밝혔다.
강주형기자 cubi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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