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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에 치인 직장인들 "추석 연휴는 남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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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에 치인 직장인들 "추석 연휴는 남의 일"

입력
2015.09.24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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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직ㆍ승진 위해 자기 계발에 투자

고과 만회하고자 대체휴일 반납도

"인생 이모작 골든타임… 고향 못 가"

끊임없는 경쟁이 명절 풍속도 바꿔

서울의 한 세무법인에서 6년째 일하고 있는 임모(38)씨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입학원서 준비에 추석 연휴를 전부 투자하기로 했다. 내달 5일부터 원서접수에 들어가는 로스쿨 입시에서 자기소개서 작성이 최종 당락을 좌우할 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임씨는 평소 야근과 술자리가 잦아 자기소개서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탓에 대체휴일제 시행으로 보장된 나흘의 시간을 최대한 살려보기로 했다. 그는 24일 “자기소개서 작성에 도움을 주는 온라인 특강을 등록했고 지인들에게 부탁해 미리 작성한 소개서 초안도 첨삭받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추석 연휴를 인생 이모작의 ‘골든 타임’으로 이용하려는 직장인이 늘고 있다. 명절은 가족이나 친척이 오순도순 둘러앉아 함께 보내는 시간이라는 정의는 이들에겐 한가한 얘기일 뿐이다. 취업 자체도 어렵지만 취업에 성공해도 끊임없이 이직과 승진을 위한 자기 계발 경쟁으로 내모는 각박한 현실이 직장인들의 명절 풍속도마저 바꾸고 있는 셈이다. 이미 직장인 사이에서는 회사를 다니면서 새로운 자격증이나 입사 시험을 준비 중인 사람을 가리키는 ‘샐리던트(salaryman+student)’란 신조어가 널리 퍼져 있다.

국내 대기업 재무파트에 근무하는 2년차 직장인 김모(28)씨는 이번 연휴 기간 동안 문을 연 도서관에서 살 생각이다. 그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에 다니고 있으나 치열한 생존 경쟁에 회의감이 들어 좀 더 안정적이고 전공분야를 살릴 수 있는 금융공기업 입사에 도전하기로 했다. 김씨는 “10월에 원하는 금융공기업 시험이 몰려 있어 대체휴일이 낀 추석 연휴를 마지막 승부처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부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으려 명절에 일부러 출근하는 직장인도 적지 않다. 대기업 영업직 7년차 대리인 정모(34ㆍ여)씨는 이번 대체휴일 근무를 자청했다. 중국 국경절이 시작되는 다음달 1일 전에 중국 업체와의 계약을 마무리해야 할 이유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곧 과장 승진을 앞두고 있는 터라 고과 점수를 만회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컸다. 정씨는 “가정도 있는데 대체휴일까지 반납하면 회사에서 더 높은 점수를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심리가 있다”고 속내를 내비쳤다. 실제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15~21일 회원 36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대체휴일이나 특별근무수당이 마련되면 추석 연휴에 근무를 하겠다’는 응답이 84.0%나 됐다.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이나 인턴들은 명절 연휴를 반납하고 자기 계발에 투자해야 한다는 부담이 더 크다. 얼마 전 한 공기업에 ‘채용형 인턴’으로 입사한 최모(26ㆍ여)씨는 연휴 기간 동기 15명과 함께 정규직 입성을 목표로 스터디 모임을 하기로 했다. 정규직에 최종 합격하려면 프레젠테이션 면접과 논술시험을 통과해야 하는데 평소에는 업무 내용을 공유할 시간이 마땅치 않아 연휴를 이용하기로 다른 인턴들과 의기투합한 것이다. 소규모 교육업체에서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는 장모(30)씨도 고향 방문을 미루고 조만간 시작될 하반기 정규직 채용에 대비해 포트폴리오 작성에 매진할 계획이다. 장씨는 “급여가 적은 비정규직이라 이직을 고려하고 있지만 회사 내부에서는 눈치가 보여 부득이 연휴에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상학 한양대 사회학과 교수는 “무한경쟁을 요구하는 사회 분위기가 자리잡으면서 공동체의 미덕을 되새기는 명절의 취지가 퇴색되고 개인의 성취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안아람기자 oneshot@hankookilbo.com

양진하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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