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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애마의 조건, 작거나 낡았거나

입력
2015.09.24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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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서 방탄용 벤츠 거절, 피아트 선택

방한 땐 "한국서 가장 작은 차 원해"

빈부격차·기후변화 관심

지난해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기아 쏘울 승용차를 타고 이동했다. 홍인기기자 hongik@hk.co.kr
지난해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기아 쏘울 승용차를 타고 이동했다. 홍인기기자 hongik@hk.co.kr
미국 방문을 시작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22일 메릴랜드주 앤드류 공군기지에 도착해 오바마 대통령의 영접을 받은 후 소형차인 피아트 500L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메릴랜드 AP=연합뉴스
미국 방문을 시작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22일 메릴랜드주 앤드류 공군기지에 도착해 오바마 대통령의 영접을 받은 후 소형차인 피아트 500L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메릴랜드 AP=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은 대형 승용차의 종주국인 미국에서도 역시 소형차를 선택했다. 22일 워싱턴D.C. 인근 메릴랜드주 앤드류스 공군기지에 도착한 교황은 오바마 대통령 가족의 영접을 받은 뒤 이탈리아산 소형차 검은색 ‘피아트 500L’에 탑승해 이동했다. 피아트 500L은 배기량 1,400㏄로 미국에서 2,000만원대에 판매되고 있다.

미국 쪽에서 교황을 위해 당초 준비하려던 차량은 방탄 기능을 갖춘 메르세데스 벤츠였다. 교황은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방탄차는 유리로 만든 정어리 통조림 같은데다 사람들과 섞이는 걸 방해한다”고 말했다. 암살 위험에 대해서도 “내 나이면 잃을 것도 없다”며 “결국 하느님의 손에 달린 일”이라고 태연해했다.

교황은 지난해 한국 방문 때도 “한국에서 가장 작은 차를 타고 싶다”며 기아차 ‘쏘울’(1,600㏄)을 선택했다. 바티칸에선 배기량 1,600㏄의 파란색 포드 ‘포커스’를 직접 운전해 이동한다. 검소한 생활을 해온 그는 아르헨티나 대주교 시절에도 운전기사를 따로 두지 않고 직접 운전했다. 최측근인 신부가 극빈층 거주지역을 방문할 때 쓰던 1984년식 중고차 르노4를 선물 받아 타기도 했다.

여러 소형차 중에서도 교황이 해외 방문 때 가장 즐겨 타는 건 피아트다. 2013년 7월 브라질 방문 때는 피아트의 1,600㏄ ‘아이디어’를 탔고, 지난 6월 남미 순방 때 에콰도르에서도 이 차를 이용했다. 지난해 11월 터키 방문 때는 르노의 소형 은색 세단 ‘클리오’를 탔다. 올 1월 필리핀 마닐라에 갔을 때는 현지의 대표적인 서민 교통수단인 ‘지프니’와 폭스바겐 ‘투란’을 이용했다. 미국으로 향하기 전 쿠바에선 푸조의 픽업트럭 ‘호가’를 개조한 차를 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왜 소형차를 고집하는 걸까. 역대 다른 교황과 구별되는 서민적인 행보에다 빈부격차, 기후변화 등의 관심사와 무관하지 않다. 교황은 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내가 전하는 경제적 평등과 기후 변화에 관한 대응 방안은 모두 교회의 가르침 안에 있는 것”이라고 자신의 신념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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