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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예능감은 아껴 두겠다"

입력
2015.09.24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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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셈블리' 연기 호평은 작가 덕

홍상수 감독에 대한 부정적 생각

영화 같이 찍고 달라져

영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로 지난 8월 스위스 로카르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정재영은 “배우 일이 잘 안 되면 스위스로 가려 한다. 스위스 사람들은 내 얼굴을 좋아하나 보다”며 웃었다. 최민영 인턴기자(숙명여대 법학부4)
영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로 지난 8월 스위스 로카르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정재영은 “배우 일이 잘 안 되면 스위스로 가려 한다. 스위스 사람들은 내 얼굴을 좋아하나 보다”며 웃었다. 최민영 인턴기자(숙명여대 법학부4)

지난 23일 오후 배우 정재영은 약속했던 강남구의 한 카페 밖에 쪼그려 앉아있었다. 쏟아지는 사람들의 시선을 그는 개의치 않았다. 사진 촬영도 인근 도산공원에서 했다. “맥주 한 잔 마시면서 인터뷰하자”며 작은 선술집으로 기자를 이끌었다. 스타가 아닌 배우로 살아가는 서민적인 그의 평소 풍모다웠다. 지난 17일 막을 내린 KBS 드라마 ‘어셈블리’의 용접공 출신 국회의원 진상필이 화면 밖으로 걸어 나온 느낌이었다. 시청률은 낮았어도 반향은 컸던 ‘어셈블리’와 24일 개봉한 영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감독 홍상수) 등에 대한 질의응답은 술자리 수다를 방불케 했다. 웃고 떠들던 자리는 소주와 소박한 안주로 꾸며진 2차로 이어졌다.

-처음 출연한 드라마를 마치고 나니 기분이 어떤가.

“인터뷰할 때마다 왜 드라마 안 하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마음 가는 이야기가 없었다. 말랑말랑한 로맨스는 재미도 없고 내 나이에도 안 맞다. (11월 개봉하는) ‘열정 같은 소리하고 있네’의 정기훈 감독을 통해서 ‘어셈블리’ 출연 문의가 들어왔다. 정현민 작가와 황인혁 PD 등에 대한 영화계 평가가 워낙 좋아 흥미를 느꼈다. 드라마를 한 적 없어 방송 스태프들이 좀 긴장했다고 하더라. 내 이미지가 좀 세보이니까 혹시 촬영장에서 진상 부릴까 걱정을 했다고 한다.”

-‘어셈블리’ 마지막회에서 진상필이 오열하며 던지는 대사와 연기가 압권이었다.

“작가 분이 (극본을)잘 쓰셨다.”

-홍상수 감독과는 ‘우리 선희’이후 두 번째 영화를 찍었는데 좀 익숙해졌나.

“오히려 힘들었다. 촬영 분량이 ‘우리 선희’보다 많아 10일내내 찍었다. 홍 감독 촬영장은 굉장히, 은근히 엄청나게 기가 빠진다. 아마 홍 감독 영화를 한 달 내내 찍으면 감독도 배우도 다 쓰러질 것이다. 십 분 넘는 연기가 바로 한 장면을 구성하니 집중력이 많이 필요하다. 배우들에겐 훈련이 많이 된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로 로카르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심사위원들이 내가 배우가 아닌 줄 알았나 보다. 너무 꼬질꼬질하게 나오니까. 너무 평범해 보여서 더 사실적으로 보인 거 아닐까? (홍 감독 영화에 자주 나온)김상경 같은 배우는 기본 틀이 좋다. 홍 감독이 잘 생긴 사람을 구질구질하게 만들었다. (유)준상씨도 멀끔한데 망가뜨린 거다. 이선균이도 멀끔하고 목소리가 좋다. 그런데 나는…(웃음). 내가 봐도 영화 속 내 머리가 너무 지저분하더라. 이발하고 촬영하려 했더니 홍 감독이 자르지 말라 했다. 그랬더니 정말 보기 싫은 9:1머리가 됐다.”

-예전엔 홍 감독 영화 출연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들었는데.

“이럴 줄 모르고 그냥 투덜거리긴 했다. 배우들에게 개런티 안 주고 인맥으로 영화를 싸게 찍는 줄로만 알았다. 개런티가 거의 없긴 하지만 주긴 준다. 흥행하면 보너스도 입금해준다.”

-홍 감독 영화에는 어떤 인연으로 출연했나?

“준상씨랑 친해서 영화 뒤풀이에 참석하게 됐다. 처음 뵙고 술 한잔 하는데 술자리가 특이했고 느낌이 매우 좋았다. 한 사람씩 돌아가며 진지하게 얘기하고 한 사람씩 일어나 노래를 부르는데 진짜 적응이 안 됐다. 시인이나 소설가들의 술자리 같다고 할까. 이후 홍 감독이 전화해서 이틀만 빼달라며 출연 제의를 했다. ‘한번 해보자, 부딪혀보자’며 수락했다.”

-영화 속에서 상의를 벗어 넉넉한 뱃살을 드러내는 장면이 있다. 배우로선 감추고 싶은 모습일텐데.

“그게 촬영 당시 내 진짜 배의 모습이다. 의도적으로 그리 만들지도 않았다. 좋은 모습, 잘 생긴 모습만 보이면 그게 배우인가?”

-홍 감독은 장면의 의도를 말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맞다. 이런 식으로 해라는 말을 안하고 대사 다 외웠냐고만 묻는다. 그런 방식이 오히려 좋은 연기의 원천이 된다. 혼자서 상황에 대한 해석을 더 넓게 하면 연기가 힘들어지기는 해도 좀 더 진실되게 연기할 수 있다. 어떤 감독은 자꾸 감정을 설명하려는데 착각이다. 초반엔 이런 감정, 중반엔 이런 감정, 후반엔 이런 감정으로 연기하라는데 정말 무식한 경우다.”

정재영의 청소년 시절 꿈은 기자와 방송 PD였다. “학교도 직장처럼 느꼈던” 그는 출퇴근의 압박이 없는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어했다. 그는 “다른 클럽 활동은 다 고리타분해 보여 방송반 활동을 했는데 체질에 맞았다”고 했다. 연극과의 첫 인연은 고교 2학년 때 맺어졌다. “사람이 텔레비전에서 나온 듯해 완전 쇼킹”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걸로 땡이었다”고 했다. 이후 연극으로 연기에 입문했고 “적성에 딱 맞는 일”임을 깨달았다.

-‘어셈블리’로 대중들에게 좋은 이미지가 생겼다.

“그건 모를 일이다. 여하튼 배우로 오래 생활하려면 그런 것에 너무 흔들려서는 안 된다. 연기자로서는 나쁘든 좋든 어떤 이미지가 안 생기도록 하는 게 좋다.”

-깡패 등 나쁜 역할은 했어도 뼈 속까지 악당인 연기를 한 적이 없다. 매번 연민을 자아내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 연기도 해보고 싶은데 뼈 속까지 나쁜 사람이 그렇게 많을까라는 생각도 한다. 선과 악이라는 게 너무나 상대적인 거다. 남북한 관계를 봤을 때 북에게 남은 악이다. (아무리 험한)영화나 음악, 미술이라도 세상이 악하다는 걸 보여주려는 경우는 없다. 살 가치가 없다는 것 보여주려 하기 보다 이래선 안 된다며 또 다른 희망을 결국 이야기 하게 된다.”

-배우로서 초심을 잃을 때도 있을텐데

“경제적인 이유로 흔들릴 때가 있다. 그런데 돈을 잘 벌려면 배우로서 연기를 잘하고 작품을 잘 골라야 한다. 꼼수로는 돈을 많이 벌 수도 없다. 재테크 재주도 없으니 돌고 돌아도 결론은 연기다. 연기도 못하고 작품도 좋지 않은데 저절로 흥행될 리도 없다.”

-어려서부터 연기에 재능이 있었나.

“대학 입학에 도움이 될까해서 (고교 3년 때)연극제에 나갔다. 연기를 배운 적이 없어 시키는 대로 했는데 청소년연극제 등 두 곳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주인공도 아니었다. ‘매우 진실된 연기’라는 심사평이 따랐다. 오래 연극했던 사람들은 다 어리둥절해 했다.”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할 생각은 없나.

“사람들이 맨날 꼬시는 게 그거다. 내 생각에는 내가 출연하면 다 죽는다(웃음). 나이 더 들어 연기로 할게 없으면 그때 (예능감을) 써먹으련다. 지금은 연기에 에너지를 쏟고 싶다. 나중에 ‘꽃보다 할배’ 같은 프로그램 하고 싶다. 내가 여행을 좋아한다. 어렸을 때 지구는 돌아보고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혼자 다니는 건 무섭다. 여행은 외로우면 안 된다.”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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