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인성의 단편 중 ‘글주정’이란 작품이 있다. 내용은 제목마따나 한 소설가가 술에 취해 내뱉는 말들이 전부이다. 이인성씨의 여느 소설이 그렇듯 딱 잡히는 서사는 없다. 무용하고 무의미한 듯한 말들의 난무, 말에 의해 구성되는 세계의 허위적 체계에 대한 반성과 고발, 그렇게 드러나는 의식의 깊은 행간 등이 주요 골자다. 주정인 만큼 논리가 강조되지도 않고, 체면 차린 격식이나 품위 또한 없(어 보인)다. 또 주정인 만큼 노골적이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하고, 때론 구역이 치밀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 확인한 바는 없지만, 작가가 실제로 술에 취해 썼다고 보긴 힘들다. 취중 망언이라기엔 그 혼란과 치열의 엄밀성이 극단에 달해 있고, 감정을 너저분하게 전시하거나 방사하지도 않는다. 몸이 취한 게 아니라, 언어가 취한 것이고, 그 언어를 부리고 언어에 부림 당하는 작가의 정신이 상궤를 벗어나려 애쓰고 있는 것이다. 언어의 깊은 극단이나 궁극적으로 파헤쳐낼 수 있는 정신의 첨단은 사실, 역설적이게도 언어도단에 의해서나 파악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또 역설적이게도, 언어가 가지고 있는 정치한 듯 모호한 다면성과 실제로 엉기고 드잡이하는 싸움이 필수다. 그 긴 싸움의 끝없는 연장을 작가는 결국 문학의 본령이라 여기는 듯하다. 그런 그가 최근 새로운 ‘문학실험실’을 열었다. 작가도 독자도 마구 취해보시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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