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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 김] 농경민족의 파티, 추석을 기다리며

입력
2015.09.24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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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있으면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는 추석이다. 추석이 중국 풍습인지 한국 고유의 풍습인지는 참고문헌을 더듬어서 더 전문적으로 설명해줄 분들이 많을 테니 생략하기로 하자. 추석은 결국 한해 농사를 잘 지었기에 자연과 조상과 이웃에 감사하는 날이며, 일년의 기다림인 농사의 결실을 보는 절일(節日)이다. 또한 다음해의 농사를 기리는 시기로서 깊은 의미가 있었다. 요즘은 일년 사시사철 원하는 작물 대부분을 얻을 수 있고 수입산 농산물이 넘쳐나는데 농공감사절로서의 추석이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온가족이 모이는 추석 차례상에는 우리 땅에서 자란 햇과일을 올리고 막 추수한 쌀로 송편을 빚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지 않나 싶다. 추석이란 풍요의 상징으로 잠시나마 농사를 멈추고 일년의 노동에 대한 보상과 자축을 할 수 있는 날이었겠다.

추석을 앞두고 재래시장을 찾은 시민들이 제수 및 선물용 과일을 고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추석을 앞두고 재래시장을 찾은 시민들이 제수 및 선물용 과일을 고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그런 즐거운 날이 어찌 우리에게만 있겠는가. 지구상에 농경문화를 가지고 있는 민족이라면 응당 농공감사절을 지낸다. 중국에서는 중추절, 일본에서는 오봉, 독일에서는 에른테당크페스트(Erntedankfest), 프랑스는 투생(Toussanit), 하물며 러시아도 성 드미트리 토요일(Saint Dimitri Saturday) 이라는 명절을 지낸다. 이름은 각기 다르지만 보통 8~9월 여름이 막 지난 가을이나 10~11월 겨울로 넘어가기 전의 가을이 ‘파티’의 시기다.

미국 추수감사절의 메인 요리인 칠면조 구이. 7시간을 꼬박 매달려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미국 추수감사절의 메인 요리인 칠면조 구이. 7시간을 꼬박 매달려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칠면조 조리법을 보자. 20LB(4.5kg) 정도 되는 칠면조 한 마리를 그냥 굽는 게 아니다. 내장이 있던 자리에 빵이나 고기, 목뼈 등을 넣어 스터핑(stuffing?음식물의 내부를 채우는 소)을 만들어 채우고 소스와 양념을 발라가며 오븐에서 5-6시간 정도를 천천히 굽는데 이때 나온 기름과 육즙으로 소스까지 만든다. 다른 음식은 만들지도 않고 칠면조만으로도 약 7시간 정도는 요리해야 한다. 말하자면 아침부터 하루 종일 음식 장만하는 것이 일이니 족히 20시간은 주방에 매달려야 추수감사절 저녁식사를 성공적으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예전 독일인 요리사 친구가 에른데탕크페스트의 일부인 옥토버페스트를 위해서는 일주일 이상 소시지와 햄을 준비한다고 했다. 어느 나라의 추수감사절 보더라도 오랜 시간 공들여야 하는 것은 우리의 추석과 다를 바가 없는 것 같다.

요즘은 추석 쇠는 일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그래도 많은 집 주방에서는 전 부치는 고소한 냄새가 날 것이고, 송편 빚을 쌀가루를 빻기 위해 방앗간은 쉴 틈 없이 돌아갈 테고, 여전히 우리네 어머니들과 아내들은 힘이 들겠다. 금년에는 나도 좀 많이 거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가 나이가 드셔서도 아니고, 딸아이가 생겨서도 아니고 형 가족이 미국으로 발령이 나서도 아니다. 추석 음식은 오래 준비 해야겠지만 그 음식을 나눠 먹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충분히 이해할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먹는 자체의 즐거움 보다는 음식을 함께 만드는 과정에서 나누는 많은 이야기들이 더 즐겁다는 것을 알 나이 말이다. 독자 여러분들의 즐거운 추석을 기대한다.

요리사

레이먼 김 '포스트 Eat' ▶ 시리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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