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대주주 주식 양도세율
10%서 20%로… 대기업 수준 올라
당장 연말부터 '투자 절벽' 우려
당국 "자본소득 과세 정상화 과정"
"투자 위축" "다른 경로 지원 가능"
전문가들도 반응 엇갈려
모바일 게임업체 대표 A씨는 2010년부터 사재를 털어 개발해 올 연말 출시할 예정이던 게임 4종을 내놓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게임 출시에 드는 비용 4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던 엔젤투자자들이 갑자기 투자 의사를 접었기 때문이다. A씨는 “투자자들이 주식 양도소득세율 인상 탓에 당분간 벤처 투자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알려왔다”면서 “벤처 투자 리스크는 그대로인데, 기대 이익이 줄어들면 당연히 투자가 끊길 수밖에 없다. 신혼집까지 팔아 어렵게 만든 게임을 사장시키지 않으려면 해외투자자를 찾는 방법 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내년부터 중소ㆍ벤처기업 대주주의 주식 양도소득세가 대기업 수준으로 대폭 상향 조정되면서 벤처기업들이 ‘투자 빙하기’를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양도세 부담이 커지면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 유인이 급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벤처업계는 현 정부의 창조경제 기조에 역행하는 조치라며 반발하지만, 정부는 “주식 과세 정상화는 불가피하다”며 맞서고 있다.
23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달 발표한 2016년 세법 개정안에서 내년 1월부터 상장 중소기업 대주주에 부과되는 주식 양도소득세율을 현행 10%에서 20%로 상향, 대기업과 같은 수준으로 맞추기로 했다. 비상장사 역시 대주주에 한해 세율을 10%에서 20%로 올린다.
정부는 내년 4월부터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인 상장사 대주주 범위도 두 배로 확대한다. 유가증권(코스피) 시장 상장 기업은 대주주 기준을 현행 ‘지분율 2% 이상 또는 시가총액 50억원 이상’에서 ‘지분율 1% 이상 또는 시가총액 25억원 이상’으로, 코스닥 시장 상장 기업은 ‘4% 이상 또는 40억원 이상’에서 ‘2% 이상 또는 20억원 이상’으로 각각 변경한다.
벤처업계는 이번 세법 개정안이 벤처 투자 활성화 등 창조 경제에 반하는 ‘엇박자 정책’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투자자의 주식 처분 차익에 부과되는 양도소득세가 대기업 수준으로 강화되면 벤처 기업에 대한 투자 메리트가 줄어들면서 ‘투자→신기술 창업→투자자의 자금회수’라는 선순환 구조가 무너진다는 것이다. 허영구 벤처기업협회 정책연구팀장은 “세법 개정안은 최근 정부가 잇달아 발표하고 있는 벤처 활성화 정책과 상충된다”면서 “한국의 열악한 중소ㆍ벤처 생태계를 감안하면 양도소득세 과세 강화는 시기상조”라고 주장했다. 앞서 이번 세법 개정안 의견 수렴 과정에서도 중소기업청이 강력히 반대 입장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예상되는 올 연말부터는 벤처 업계가 ‘투자 절벽’에 직면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중소ㆍ벤처 투자자들이 대주주 양도소득세 과세를 피하기 위해 주식을 대량 처분해 연말에 지수에 부담이 되곤 하는데, 대주주 범위가 확대되면 앞으로 진폭이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벤처기업은 경영상 어려움을 호소한다. 한 비상장 바이오 관련 벤처기업 대표 이모씨는 “자금 조달을 위해 구주(舊株)를 팔아야 할 때가 있는데, 양도소득세율이 두 배 오르면 이자율이 두 배로 오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반면 정부는 자본소득 과세 강화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박상영 기재부 금융세제팀장은 “양도소득 과세 정상화 차원에서 주식 과세 범위 확대는 꼭 필요하다. 선진국 가운데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양도소득세율을 달리하는 곳은 없다”고 말했다. 박 팀장은 또 중소기업 대주주 범위를 현 수준으로 넓힌 2013년 세법 개정 당시에도 시장에 별 충격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실제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2014년 신규 벤처투자 규모는 1조6,393억원으로 2013년(1조3,845억원)보다 2,500억원 가량 늘었다.
전문가들의 반응도 엇갈린다. 박소연 한국투자증권 연구위원은 “굴뚝 산업이 힘을 못 쓰는 지금 경제 상황에서 중소나 벤처 기업 투자가 활발히 이뤄져야 하는데, 투자액이 커질수록 세금이 커진다고 생각하면 투자가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오윤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벤처 산업에 대한 각종 조세 특례가 많기 때문에 주식 양도차익에 과세가 된다고 해도 다른 경로로 충분히 지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세종=이성택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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