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당초 공익신탁 방식 반대
입법 주도한 총리실 등 반대로 좌절
은행권, 직원에 기부 강제해 논란
접수은행들 실적경쟁 번질까 불안
"재단도 안 만들고 기부하라니…"
"경제를 정치로 풀려해" 눈살도
청년고용을 돕기 위해 탄생한 청년희망펀드가 출범 초기부터 온갖 뒷말과 걱정을 사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처음 아이디어를 던진 뒤 불과 일주일도 안 돼 초고속으로 펀드가 출발했지만, 준비 과정에서의 부처간 갈등, 실적 쌓기용 팔 비틀기, 실효성 논란 등 잡음이 무성하다.
23일 정부와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15일 국무회의에서 박 대통령이 청년 일자리 펀드 조성 방안 마련을 지시한 후, 펀드 조성 방안을 두고 정부 부처간 팽팽한 기 싸움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기부금을 접수할 금융기관을 관장하는 금융위원회는 국무회의 이틀 뒤인 17일 열린 차관회의에서 2012년부터 설립돼 운영중인 ‘은행권청년창업재단’을 펀드 운영주체로 활용할 것을 제안했다. 새로 재단을 만들어 실제 사업에 나서려면 최소 3개월 가량 기간이 소요되는 만큼, 기존 재단의 활동영역을 확장ㆍ변경해 사업착수까지 걸리는 시간을 단축하자는 취지였다.
금융위는 또 이번에 채택된 ‘공익신탁’ 형식 역시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올 초부터 시행된 공익신탁법에 따라 기부희망자가 은행을 찾아 직접 실명으로 가입신청서를 작성해야 하는 등의 번거로움이 있는 만큼, 기존 재단이 은행들과 함께 직접 기부금도 받고 무기명신탁도 유치할 수 있는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국무조정실과 법무부 등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국무조정실은 “투명성 높은 제도로 기부에 대한 신뢰를 높일 수 있다”며 공익신탁 형식 채택 배경을 밝혔지만, 일각에선 공익신탁법 제정을 주도한 법무부와 검사 출신 황교안 총리 산하의 국무조정실 등이 사업의 효율성보다 생색내기에 치중한 결과라는 해석도 나온다.
은행권에선 직원들에게까지 펀드 기부를 사실상 강제했다 철회한 해프닝을 두고 뒷말이 많다. 공익신탁을 취급하는 5개 시중은행 가운데 가장 먼저 21일부터 가입신청을 받은 KEB하나은행은 같은 날 임직원에게 가입을 독려하는 단체메일을 보내고 일부 지점에선 1인당 1계좌 의무가입을 사실상 할당하기도 했다. ‘기부를 강요한다’는 논란이 일자 KEB하나은행은 22일 오후 다시 이메일을 보내 ‘의무’가 아니라 ‘자발’ 가입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수탁은행들은 단순 접수 창구의 역할을 넘어 행여 정부 눈치를 보는 실적경쟁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금융산업노동조합은 “청년희망펀드가 은행원들의 실적 압박으로 변질돼서는 안 된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논란이 이어지자 첫날부터 가입 규모를 공개하며 흥행을 홍보하던 은행들은 돌연 개별 모집실적 공개를 중단하고 은행권 전체 실적만 통합 공시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개업 효과’를 넘어 청년희망펀드가 롱런에 성공할 지도 미지수다. 법무부에 따르면 21~22일 이틀 간의 5개 은행 신탁자산 총액은 9억1,303만6,000원, 위탁자는 3만4,645명에 달했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국무조정실조차 “청년 취업기회 확대라는 방향 아래, (향후 설립될) 청년희망재단(가칭)의 사업을 지원하는데 쓰겠다”고만 밝혔을 만큼 아직 구체적인 사업계획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은행원들 사이에서 “재단도 안 만들어졌는데 펀드 가입하라는 게 말이 안 된다”는 볼 멘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윤석헌 숭실대 교수는 “돈을 모아 일자리 창출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발상이 틀렸다”며 “경제 문제를 경제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풀려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용식기자 jawohl@hankookilbo.com
송옥진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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